• 인간의 굴레에서

    2010. 7. 29.

    by. 셰익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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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은 시간은 정말 행복했다. 책장을 덮는 순간 너무 아쉬워서 그의 다른 작품 "면도날"을 샀다.

    서머싯 몸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감히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만든 작품이다.
    그의 작품이 대게 그렇듯이 서두가 각종 상황설명 들로 인해 장황하다. 지루한 부분이 조금 지나면, 다리를 저는 주인공 필립을 위로하는 교장선생님의 말로부터 이 소설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넌 네 불행에 대해 좀 과민한 것 같다.
    오히려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니?
    그것을 반항심으로 받아들이면 수치로만 여겨질 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하느님이 네게 짊어지게 한 십자가로 생각해 보아라.
    네 어깨가 특별히 강하여 사랑의 표시로 십자가를 지게 하셨다고 생각해 보란 말이다.
    그러면 그게 불행이 아니라 행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작가가 생각하는 인간의 굴레는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닐까하고 나름 해석해본다.

    특히 <밀드레드>라는 여인을 사랑하는 주인공 필립의 모습에서 모두에게 있을 법한 한심한 남성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랑하면 안되는 줄 알지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인간. 그것 또한 굴레일지 모르겠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태클을 걸어오는 것들은 수없이 많다. 인간은 돈과 재능, 열정, 사랑 등등등등의 것들로 부터 진정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하루에 개인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몇 번이나 해야 하는 걸까. 인간을 속박하는 굴레라는 것은 어쩌면 세상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삶이란 것이야 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의 굴레라는 것.
    주인공이 화가가 되고 싶다고 하다가 현실과 타협해서 의대로 자신의 길을 선회할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착잡함을 느낀다.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을 실패하고 싶지 않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나는 늘 그랬다. 무언가를 할 때마다 양발을 다 담그지는 않는다. 언제든지 빠져나올 길을 만들어놓고, 반밖에 발을 담그지 않는다. 한쪽 발은 언제든지 도망가기 위해서 땅을 딛고 있는 것이다.
    실패하는 것이 싫고 두렵다.
    서머싯 몸은 그것이 보통의 인간, 즉 필립 그리고 우리의 삶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개인이 맞서 싸우기에는 너무나 크고 거대한 운명이라는 것을 무기로 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이길 수 없다. 모든 것을 던져도 프라이스 처럼 빈곤을 헤매이다 인정도 못받고 자살해야 하든가, 밀드레드에 대한 사랑 처럼 돌아올 이득이 하나도 없는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여자인 샐리를 만난 필립도 결국 인생은 그렇게 힘든 굴레 속에서도 아름다운 법 이란걸 느끼게 해주면서 끝맺는다. 거기에 나오는 마지막 문구가 명문장이다.

    "아메리카는 다름아닌 바로 이곳에 있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동안 남의 말과 글이 주입해온 이상을 좆아왔을 뿐 내 마음의 욕망을 따른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자신의 행로는 언제나 어떤 것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좌우되었을 뿐 내 마음이 진정 원하는 바를 따른 적이 없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나는 이 모든 거짓을 내던져 버렸다.
    나는 지금까지 미래만을 염두에 두고 살아왔다. 그래서 현재는 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이상?  나는 의미없는 삶의 무수한 사실들로 복잡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짜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가장 단순한 무늬, 그러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죽음을 맞는 그 무늬가 동시에 가장 완전한 무늬임을 깨닫지 않았던가?
    행복에 굴복하는 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인지도 몰랐지만 그것은 수많은 승리보다 더 나은 패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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