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찾아 2427㎞… 오늘도 달리는 '안산 마라톤맨'

    2009. 9. 3.

    by. 셰익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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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트라 마라토너' 김진한씨가 전국을 누비는 이유
    어릴적 제천역서 길잃고 나이·이름 모르는 고아…
    "엄마가 달려나올 것 같아 "국토 '1횡단 2종단' 기록

    '어머니는 어디 계신가요?'

    어머니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마라톤을 하는 30대 직장인이 있다. 경기도 안산시 와동에 사는 김진한(33)씨.

    지난 2일 오후 3시쯤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 시화호갈대습지공원 트랙. 김씨는 올 늦가을에 열릴 마라톤 대회 출전을 위해 한창 훈련 중이었다. 김씨는 평택의 한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주·야간조로 매일 12시간씩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주간조일 땐 오후 9시30분쯤, 야간조일 땐 오전 9시30분쯤 일을 마친 후 2~3시간씩 10~15㎞ 달리기를 한다.

    정식 마라톤 선수도 아닌데 연습에 열중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열심히 달리다 보면 어디선가 어머니가 나를 알아보고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죠"라고 답했다.

    잃어버린 이름·나이, 그리고 어머니

    1976년 1월 18일생. 세상이 알고 있는 김씨의 생년월일이다. 그러나 이는 진짜가 아니다. 그는 1985년 1월 14일쯤 충북 제천 고모집에서 삼촌을 따라나섰다가 제천역에서 길을 잃었다. 제천역에서 우연히 얻어 탄 시외버스의 운전사에 의해 다음 날 대전경찰서 보안과에 맡겨졌다. 보안과 형사가 추측해 기록한 10살이 그의 나이가 됐고, 경찰이 대전 탄방동 아동보호소로 보낸 1월 18일이 생일이 됐다. 그가 당시 보호소 직원에게 대답한 '진한'이란 이름과, 직원이 임시로 정한 '김'이란 성(姓)이 합쳐져 그의 성명이 됐다.

    지난 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 시화호갈대습지공원 트랙에서 김진한씨가 마라톤 기록 단축을 위한 훈련을 하고 있다./양희동 기자
    김씨 기억 속 아버지는 강원도 태백의 광부였다. 아버지가 늘 플래시가 달린 안전모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향을 태백으로 여기는 이유는 그곳에 광산이 많았고, 고향집에서 제천 고모집까지 기차를 1시간 정도 타고 갔는데 태백~제천 거리가 그 정도여서다.

    고향집에서는 아버지·어머니·할머니와 살았다. 어머니는 늘 밭에서 일했다. 그는 "어머니 얼굴은 전혀 생각나지 않지만 밭일하던 뒷모습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광부인 아버지는 일을 마치면 대폿집에서 술을 마시고 와 어머니와 심하게 다투곤 했다. 김씨는 "술 취한 아버지에게 맞던 어머니 모습이 자주 떠올라 슬퍼지곤 한다"며 "심한 폭력 탓에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는 재혼하면서 나와 할머니는 제천 고모집으로 보내졌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당시 충격 탓에 아동보호소에서 부모나 가족 이름을 전혀 기억해내지 못했고, 결국 고아가 됐다.

    2년을 아동보호소에서 지낸 김씨는 충남 논산시 강경읍 '금강애린원'이란 보육원에 보내졌고, 그곳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했다. 학창시절 보육원에 산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해 내성적 성격이 됐다.

    고교 졸업 후 보육원을 나온 김씨는 1997년 7월 안산 반월공단의 인쇄회로기판 공장에 도금공으로 입사했다. 하지만 가족도 없는 외톨이란 생각에 거의 매일 소주를 4~5병씩 마시며 나태한 생활을 계속했다. 주위 사람들과 다툼도 잦았고, 희망이 없다는 절망감에 자살도 수차례 시도했다.

    김씨는 "하루는 우연히 내 얼굴을 보니 초췌하고 병든 것 같은 모습이었다"며 "이런 상태로는 어머니를 찾을 수도, 만나서 당당할 수도 없다고 여겨졌다"고 했다.
    그는 건강한 모습으로 어머니를 만나겠다고 결심하고 2004년 초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안산하프마라톤대회에 나가 완주하면서 본격적으로 마라톤을 시작하게 됐다.

    살아갈 이유를 선물한 마라톤

    작년 7월 17일 김씨는 부산 태종대에서 파주 임진각까지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정식 풀코스보다 긴 마라톤)에 참가해 무박 7일간 537㎞를 123시간33분 만에 완주했다.

    이로써 김씨는 2006년 인천 강화~강원도 강릉 국토횡단 308㎞ 코스와, 2007년 전남 해남 땅끝마을~강원도 고성 국토종단 622㎞ 코스 완주를 더해 '1횡단 2종단'의 울트라 마라톤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울트라 마라톤 96명의 그랜드 슬래머 중 그는 '최연소'다.

    김씨는 2006년 이후 12개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2427㎞를 달렸다. 우리나라를 거의 한 바퀴 돈 셈이다.

    그가 이렇게 전국을 종횡무진 달린 이유는 오직 하나, 어머니와 만나기 위해서다.
    어머니는 충북과 강원도 사투리가 섞인 말투를 썼었다. 이런 말투를 김씨도 그대로 물려받았다.

    5년 전에는 어릴 적 길을 잃었던 제천역에 찾아가 인근을 돌며 20년 전 잃어버린 꼬마 이야기를 듣지 못했냐고 수소문하기도 했다. 제천경찰서에 찾아가 혹시 20년 전 실종 신고된 아이는 없는지 알아봤지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

    김씨는 "마라톤 경기 중 가끔 등에 잃어버린 부모 자식 이름을 붙이고 뛰는 사람을 보면 마냥 부러워진다"며 "나는 어머니 성함을 모르니 무작정 뛰면서 길가에 서 있는 사람 중 혹시 우리 어머니가 없을까 유심히 지켜볼 뿐"이라고 했다.

    대회 출전 비용을 대기 어려워 올해는 경기에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지만 올가을부터는 다시 참가할 계획이다.

    김씨는 "힘들어도 포기만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어머니를 만나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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