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자신을 알아라

    2009. 9. 16.

    by. 셰익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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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가 그의 적들에게 제소된 시점부터 감옥갇혀서 독배를 들기까지의 대화내용을 플라톤이 기술한 책이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기록을 보면 악법 많던 권위주의 정권 시절 준법정신을 강조하려고 그의 말처럼 이용됐다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소크라테스가 하지 않은 건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신념을 위해 독배를 든 쿨한 신화는 영원히남아서 우리의 정신을 올바르게 인도한다. 
    탈출을 권유하는 친구 크리톤에게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그러면 국법이 이렇게 말할 걸세. ‘그대가 달아난다면 그대가 나와 맺은 계약과 합의를 파기하는 것 아닌가. 마지못해 합의한 게 아니고 속아서 한 것도 아니며 단시일에 결정한 게 아니라 70년에 걸쳐서 한 건데 말일세. 합의가 옳지 않아 보였다면 그대는 능히 가버릴 수 있었네. 하지만 그대는 그대가 늘 훌륭한 국법을 가졌다고 찬양한 스파르타도 크레타도 택하지 않고 어떤 아테네 시민보다 이 나라를 좋아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내 뜻을 꺾겠다면 말해 보게나.”

    크리톤은 아무 말 하지 못했고 소크라테스는 다음 날 독배를 마셨다. 말을 꺼내고 보니 민망하다. 만고의 현인과 비교하려는 인간 군상들의 무게가 워낙 경량급인 까닭이다. 
    무게만큼이나 죄목도 치졸하다. 
    소크라테스는 우주의 원리를 묻는 철학자들에게 “너 자신이나 알아라” 비웃은 죄였다. 
    인간 내면 탐구의 첫발을 디딘 죄였단 말이다. 

    오늘 우리의 주인공들 죄는 ‘자신이 사는 곳을 거짓 등록한 죄’다.
     이른바 위장전입이란 건데 총리가 되겠다는 사람부터 장관·대법관 되려는 사람(아니면 그들의 부인들)까지 안 한 사람이 없다. 
    그저 돈 벌고 자녀 좋은 학교 넣겠다고 앞다퉈 법을 어겼다. 
    그런 자신도 모르면서 국가 경영에 참여하겠다고 겁 없이 나선 죄다.

    과거에 큰 죄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털면 나오는 먼지에 불과할 따름이다. 시대를 잘못 만나 거국적으로 망신하고 집에 가야 했던 총리 후보 몇 명만 억울할 일이다. 과거에도 높은 사람들한테만 큰 죄였다. 알게 모르게 남들 다하는 거 나도 하다가, 남들 못 오르는 높은 자리에 오르다 보니 드러난 죄였다. 이런 법을 놔둘 필요가 있을까. 힘 있고 돈 있으면 지키지 않고, 힘 없고 돈 없으면 어길 일 없는 법을 유지할 필요가 있겠나 말이다.

    사실 소크라테스의 악법만큼이나 웃기는 법이다. 거리에서 청년들과 철학을 논하는 게 무슨 죄가 될까. 
    내가 주소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다는데 왜 뭐라나.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죄만큼 지중한 죄다. 소크라테스는 자칫 체제를 전복할 수 있는 불온사범이었다. 
    우습지만 위장전입도 그렇다. 국민적 합의가 있었던 까닭이다. 
    온 사회가 부동산 광풍, 교육 치맛바람에 휩싸였을 때 최소한의 방파제로 삼았던 게 위장전입 금지였다. 그걸 비웃으며 제 맘대로 옮겨 다니며 국가의 부동산 대책, 교육 대책을 무용지물로 만든 죄, 가볍지 않다.

    진짜 없애야 할 이유는 따로 있다. 법 지키다 돈 벌 기회 놓치고 더 좋은 학교에 자녀 못 넣은 정직한 시민들의 분노가 존재하는 까닭이다. 그 수가 많든 적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손해 보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소크라테스는 신념을 지키려고 법을 어겼다. 대신 처벌을 달게 받았다. 정직한 시민들은 이익을 포기하고 법을 지켰다. 그러고는 법 어기고 상 받는 잘난 사람들을 씁쓸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 어겨도 처벌받지 않는 법은 지키는 사람만 처벌할 뿐이다. 차라리 없애서 정직한 사람들도 떳떳하게 기회를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부동산·교육 대책은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 
    헌법재판소도 2004년 “악법도 법” 신화를 준법정신 사례로 소개한 교과서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권고한 적이 있다. 잘못된 법을 지키다 손해 보는 착한 바보들을 더 이상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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