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하기 싫고 출근하기 싫은 월요병 증후군 -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2021. 4. 7.

    by. 셰익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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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여전히 출근하기 싫은 아침이다.

    하고 싶은걸 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한 인생이라면 왜 우리는 매일 아침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일터로 나가야 하는가!

    얼마전 분당에 있는 잡월드에 다녀왔다.

    실업자가 300만명이 넘었다는 통계가 심심지 않게 발표되는 요즘, 어릴때부터 미리 장래 희망을 심어주자는 취지에서인지 키자니아와 잡월드같은 사업이 인기다.

     

    직업에 대해서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곳이 과연 아이들의 직업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수 있을까?

    오늘도 뚜렷한 주관없이 남들이 다 보낸다는 곳에 다녀왔을 뿐이다.

    아이의 직업은 커녕, 정작 어른 스스로도 왜 일하는지 모르고 사는게 현실인데 말이다.

     

     

    ▨ 월요병이 생기는 이유

     

    과연 우리는 왜 일하는 것일까? 이 시점에 오래전에 막스 베버라는 선각자께서 이미 써놓은 책이 등장한다. 이름하여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돼겠다. 책의 제목을 보고 지례 겁먹는 분들 계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 직장인 모두가 않는 병이 있다. 바로 `월요병`이다.

     

    막스 베버는 당신의 월요병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프로테스탄트들은 (자발적으로) 직업 인간이 되기를 원했다. 반면 우리는 (강제적으로) 직업 인간이 될 수 밖에 없다.˝ `왜 일하는가` 라는 물음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수성가한 일본 기업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지은 책 제목도 `왜 일하는가`이다. 우리의 월급쟁이 선배들은 데모를 참 많이 했다. 대학가에 불온 서적도 존재했는데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대표적이다.

     

    그 유명한 마르크스와 대척점에서 노동의 윤리를 설명한 사람이 바로 막스 베버다. 마르크스가 사회주의의 이론가라면 막스 베버가 자본주의의 대표선수 쯤으로 평가 받은 모양이다. 막스 베버는 칼뱅과 마르틴 루터 (그림의 우측 아래 두명)를 통해서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직업윤리관을 설명하고 있다.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의 사상을 쉽게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마르크스는 인간을 경제적인 동물로 파악하고 있다. 경제적인 동기가 인간의 행동을 좌우하는 주요 원인이다. 막스 베버는 인간의 행위 내면에 놓인 문화적 주관성의 영역에 관심을 둔다. 베버의 입장에서 노동은 경제적인 행위이자 문화적 행위이다. `월요병`이 생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그다지 노동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노동을 사랑한다면 주말이 가까울수록 일할 수 없다는 두려움때문에 금요병이 생기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막스 베버는 일에 대한 문화적 동기를 부여하여 우리에게 최면을 건다. `노동에 좋은 점이 있는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지금부터 노동의 미덕에 대해서 알아보자.

     

    ▨ 노동에 대한 인식의 변화

     

    종교개혁으로 프로테스탄티즘이 등장하기 전에 노동은 노예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그래서 모두 귀족이 되고 싶어했고 가진자들은 철학과 사상을 향유할 시간이 많았다. 서양 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역사시간에 교과서에서 조선시대 때는 하나같이 상인을 괄시하고 기술일 천시했다고 배워왔다.

     

    세종이나 정조 때 가서야 기술자들의 이름이 하나 둘 씩 등장하던 기억이 난다. 막스 베버는 1517년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무위도식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사상이 처음 우리에게 퍼졌다고 이야기한다. 이른바 프로테스탄티즘의 시작이다. 이때 마르틴 루터가 제창한 `천직`이라는 개념의 출현한다. 드디어 인간의 역사에서 노동이 중요해진 것이다. 루터는 ˝각 개인의 구체적 직업은 그 개인에게 신의 섭리가 지정한 구체적 위치를 충족시키라는 신의 특별한 명령˝이라고 해석했다.

     

    천직 개념이 등장하면서 노동은 더 이상 시지포스의 징벌로 이해되지 않게 된다. 노동이라는 ˝세속적 의무의 이행은 모든 경우 신을 기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며, 그것만이 신의 뜻이며, 따라서 허용된 모든 직업은 신 앞에서 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정당화되었다. 마르틴 루터의 사상을 확대 발전시킨 개신교의 대표적인 이론가는 리처드 백스터 목사였다. 백스터 목사는 재산을 모은 자가 부를 향락하여 태만과 정욕을 낳고 특히 거룩한 삶에 대한 추구에서 이탈하는 것을 비난했다.

     

    이때부터 노동하지 않는 부자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 얼마전 포스팅한 `오래된 미래` 편에서 본 것처럼 라다크 같은 원시적 생계 경제 속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인들처럼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오래된 미래`를 통해서 우리는 라다크 사람들을 통해서 현대인들의 노동에 관한 강박은 시장경제 체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동에 대한 강박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시장 경제 체제에 인간들이 적응하면서 나타난 새로운 현상인 것을 증명한 셈이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노동의 경제적인 원인은 바로 돈 때문이다. 여기에 강한 동기부여로 등장한 문화적인 단어가 바로 프로테스탄티즘에 의해 만들어진 `근면`이다. 자본제적 공장은 근면성을 가르치는 근대의 학교였다. 이 학교는 노동자는 신성한 노동을 위해 집으로 돌아간 뒤, 지나친 쾌락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새로 주입된 생활 습관을 통해 전근대적인 사람들은 노동 중심 윤리를 내재화한 근대적인 인물로 변하게 되었다. 근대적 현실 원리가 전근대적 쾌락 원리를 압도하는 대전환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여기까지 쓰고나니 지루하고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계실거 같다.

    이 시점에서 요약 정리 한번 하고 가자.

     

    마르크스는 경제적인 조건만으로 노동의 이유를 설명했다.

    `인간 = 경제적 동물`

     

    막스 베버는 문화적 조건 즉, 노동의 가치에 대한 신성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함께 고려한다. 근면한 사람에 대한 높은 평가가 노동의 이유라는 거다.

    `인간 = 경제적 동물+문화적 동물`

     

     ▨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베버는 자본주의 자체가 아니라 자본주의 정신을 분석하려 한다. 자본주의 정신은 ˝윤리적 색채를 띤 생활 관리의 방법˝이다. 이로 인해 자본주의 정신은 개개인의 일상을 규제하고 바꾸어 놓는 힘을 지니게 되었다. 자본주의 정신은 ˝인간에 의해 집단적으로 유지될, 일종의 세계관˝이다. 일반적으로 전통주의의 영향권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열심히 일해야 할 내적 동기가 발견되지 않는다.

     

    반면 자본주의 정신을 지닌 사람은 부의 추구를 자랑스러워한다. 많은 돈을 버는 것은 부끄러운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선한 행동으로 간주된다. 노동 윤리의 최고선은 모든 향락을 엄격히 피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다. 우리가 노동을 천시하는 전통주의자가 되느냐 아니면 합리적 자본주의 정신의 소유자가 되느냐 하는 것은 부의 추구와 노동의 의미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막스 베버는 `성경(Bible)`에서 전통주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내용과 자본주의 정신에 따라 강조될 수 있는 내용이 동시에 담겨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두 내용 중 무엇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노동의 의미와 부의 축적에 대한 신학적 해석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막스 베버는 주장한다. ˝돈에 대한 걱정은 마치 `언제든지 벗어버릴 수 있는 얇은 외투`처럼 성도들의 어깨위에 걸처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운명은 이 외투를 쇠사슬로 만들어버렸다.

     

    금욕주의가 세계를 변형하고 세계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이 세계의 돈에 대한 걱정은 점증하는 힘으로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마침내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힘으로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다. ˝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자동화 시스템으로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말이다. 심지어는 아이도 간접공정을 통해 컨베이어 벨트에서 태어난다.

     

    `멋진 신세계`의 연호는 포드의 자동화 시스템에서 따왔다. 당시 포드 자동차 회사가 T자형 자동차를 출시했던 1908년을 기원 1년으로 정한다. 자동화 시스템을 통한 비인간화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포드 자동차 공장에서 시작한 포디즘은 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되었고 그 결과 소비를 위해 열심히 노동하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윤리를 지닌 인간을 만들어 낸 것이다.

     

    마르크스의 사위인 `라파르크`는 1883년 자신의 저서 `게으를 수 있는 권리`에서 노동윤리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담론에 불과하다고 해석했다. 그에 따르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열심히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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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스 베버의 이론을 쉽게 풀어 쓴 노명우 선생님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노동의 이유를 묻다`에 이런 글이 있다. ˝종교개혁은 근대인들에게 전례없는 외로움을 남겼다. 가톨릭 교도들과 달리 프로테스탄트들은 고립된 존재였다. 가톨릭 신자들은 사제의 도움으로 신의 은총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제의 도움을 거절한 프로테스탄트들은 종교개혁에 참여한 대가를 혹독히 치러야 했다.

     

    칼뱅주의자들은 이전에 사제에게 의존했던 은총의 확인을 혼자 해 나가야 했다. 가톨릭의 낡은 세계를 거부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용기 있는 자들이었으나, 그들의 용기가 두려움까지 제압할 수는 없었다. 두려움을 이겨 내기 위해 그들은 노동했다. 칼뱅주의는 노동만이 유일하게 은총을 확인 할 수 있는 수단이라 했다. ˝ 이 부분을 통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에 소개된 `대심문관`편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대심문관은 인간이 노동의 고통을 받는 이유는 예수때문이라고 비난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에 사람이 빵으로만 살것이 아니라는 너의 말 한마디로 인해 인간들은 노동해야 하는 벌을 받게 되었다˝ 프로테스탄티즘이 많이 희석된 요즘은 근면의 추구보다는 소비를 하기 위해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막스 베버가 주장한 자본주의와 현대의 자본주의가 달라지게 된 이유일 것이다.

     

    이제 막스 베버의 결론을 정리해보자.

    1, 프로테스탄트들은 스스로 직업 인간이 되기를 희망했다.

    2. 우리는 직업 인간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속에 살고 있다.

    3.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막스 베버의 결론을 요약하면 ˝프로테스탄트가 주장했던 자본주의와 지금의 자본주의는 다르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분명히 좋은 의도에서 노동을 장려했다. 지금은 시스템이 인간을 집어삼켰기때문에 소비가 노동을 장려하는 기이한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잠깐 일을 멈추고, 왜 일을 하는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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