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려운 이웃에 전하는 '사랑의 명품(名品)기술'

    2009. 4. 10.

    by. 셰익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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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서 시계수리점 운영하는 소아마비 장애인 장태호씨
    불우했던 시절 떠올리며 고아·장애인 등 70여명
    25년간 무료로 가르쳐 상당수 유명수리공 활약

    톱니바퀴는 티끌처럼 작았다. 구본현(19·대구공고 3년)군이 종잇장보다 얇은 두께 0.02㎜짜리 구리판을 핀셋으로 집어 미니 선반에 고정시키고, 섬세하게 커팅기를 움직여 지름 3㎜짜리 시계 톱니바퀴를 깎았다.

    "머 하노! 너무 많이 깎았잖아!" 등 뒤에 서서 목발을 짚고 넘겨보던 스승 장태호(48)씨가 엄하게 꾸중했다. "니 정신 안 차리나. 다시 깎아라!"

    8일 오후 3시 대구 신천동에 있는 시계수리점 '태성당'. 3.3㎡(1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스승과 제자가 시계 수리에 한창이었다. 구군이 다시 톱니바퀴를 만들자, 장씨도 자기 자리에 앉아 롤렉스 시계를 고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철심,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는 과자 부스러기만한 나사를 이곳저곳에 박아 넣었다.

    장씨는 13살 때 시계 수리를 배우기 시작해 35년간 이 일로 먹고살았다. 대구 일대에서 "명품 시계를 가장 잘 고치는 기술자"로 이름난 사내다.

    그는 지금까지 70명이 넘는 제자들을 길렀다. 이 중 30여명은 고아원 출신이고, 20여명은 장애인이다. 나머지 제자들도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집안이 어려운 고등학생, 장사하다 망해서 밥벌이가 막막해진 사람, 기술이 없어 일용직을 전전해온 청년…. 그는 이들에게 공짜로 기술을 가르친다. 지금도 고등학생 2명과 어른 2명이 번갈아 가며 매일 그의 점포를 찾아와 시계 수리를 배운다.

    그는 2급 장애인이다. 선천성 소아마비로 두 다리 길이가 다르다. 앉아 있을 땐 표가 안 나도 서서 걸으면 눈에 띄게 몸이 기울어진다. 고향은 포항. 가난한 집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네 살 때 동네 개울가에 버려졌다.

    이후 그는 수녀원에 딸린 고아원에서 컸다. 장애인은 장씨뿐이었다. 또래 아이들이 밖에서 뛰어놀 때 그는 혼자 방에서 책을 읽었다. 11살 때 대구에 있는 고아원으로 옮겼다. 학교에서도 조용히 책만 읽는 그를 짓궂은 아이들이 "병신이 잘난 척한다"고 괴롭혔다.

    1972년 초, 13살의 장씨는 한밤중에 목발을 짚고 고아원 뒷산에 올라갔다. "그날도 학교에서 선배들에게 맞아 얼굴이 퉁퉁 부었지. 10년, 20년이 지나도 계속 '병신' 소리 들으며 살 것 같았어요. 부모님도 날 버렸고…."

    그는 "뒷산 절벽에 서서 '확 뛰자. 차라리 죽자' 생각하는데 누가 애타게 날 불렀다"고 했다. 그가 사라진 걸 눈치 챈 보모가 산길을 뛰어올라오며 "태호야! 태호야!" 하고 울부짖는 소리였다.

    8일 오후 대구 신천동에 있는 시계수리점 태성당에‘소아마비 시계수리공’장태호(48₩사진 왼쪽 맨 앞)씨와 그의 제자 5명이 모였다. 장씨는 35년 동안 시계수리를 하면서 70명이 넘는 후배를 무료로 가르쳤다./이재우 기자 jw-lee@chosun.com
    그해 4월, 장씨는 중학교 1학년 직업훈련 수업시간에 시계 수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교사는 손바닥만한 회중시계를 내주고 "분해해서 재조립하라"고 했다. 그는 "그때 '이게 내 운명이다' 싶었다"고 했다. 나사를 풀고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톱니바퀴, 스프링, 태엽을 만지는 동안만큼은 모든 근심 걱정이 까마득히 잊혀졌다.

    그 후 그는 시계에 빠져들었다. 혼자 새벽까지 교실에 남아 시계를 수리했다.

    1년간 학교에서 시계 수리 기술을 배운 장씨는 매일 밤 열쇠공장에서 야간근무를 하며 돈을 모았다. 그 돈으로 시계 수리 학원에 등록해 2년간 기술을 더 배웠다. 그 뒤 시계 수리점이 몰려 있는 대구 교동에서 가게 청소도 하고 잔심부름도 하면서 어깨너머로 기술을 익혔다. 수리점이 문을 닫으면 쓰레기통을 뒤졌다. 주인이 포기하고 버린 시계를 모아 고아원으로 가져가 밤새도록 혼자 뜯었다 맞췄다 했다.

    그는 스무 살 되던 해 지인의 소개로 경남 거창의 시계 수리점에 취직했다. 3년 뒤엔 경북 안동에 자기 가게를 냈다.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해 시계수리 부문 금메달도 땄다.

    그곳에서 그는 첫 제자를 맞았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식당에서 먹고 자며 허드렛일을 하는 12살 소년이었다. 그는 "내 어린 시절이 떠올라 어떻게든 기술을 가르쳐서 잘살게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단칸방에 소년과 함께 살며 혹독하게 교육시켰다. 아침에 같이 가게로 출근해 밤에 함께 퇴근했다. 돌아와서는 고장 난 시계를 주며 "내일 아침 내가 눈 뜨기 전에 고쳐 놓으라"고 불호령을 했다. 힘들다고 도망간 아이를 대구까지 쫓아가 잡아 오기도 했다. 소년은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그 소년이 지금은 유명 시계회사에 다니는 송인덕(36)씨다.

    20년 전 가게를 대구로 옮긴 후에도 장씨는 계속 제자를 받았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오정훈(23)씨도 고교 시절 장씨에게서 시계기술을 배워 부산에 있는 외국계 시계회사에 취직했다. 장씨 제자들은 1998년부터 11년째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번갈아 가며 차지하고 있다.

    오씨는 "우리 선생님은 힘들어서 울면 '뭐 잘했다고 우냐'며 매정하게 호통치다가도 퇴근할 때면 '오늘 수리 잘했다. 넌 금메달감'이라고 위로해주는 사람"이라며 "홀어머니 모시는 내겐 아버지 같은 분"이라 했다.

    현재 장씨 밑에서 배우고 있는 최천수(34)씨는 "10년 전 선생님한테 배우다가 힘들어 뛰쳐나갔는데 1년 전 사업이 망했다"며 "염치불구하고 돌아온 나를 선생님이 '잘 왔다'고 받아줬을 때 눈물이 났다"고 했다.

    장씨는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잘사는 걸 보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했다. 그는 대구에 있는 고아원 6곳에 매달 돼지고기·케이크·빵·우유 등을 보낸다. 생일날도 평소처럼 강냉이죽을 먹었던 고아원 시절, 그가 눈물 나게 먹고 싶었던 음식들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4/10/2009041000100.html?srchCol=news&srchUrl=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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