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만한 인간에 관한 셰익스피어의 두 가지 이야기

    2011. 9. 29.

    by. 셰익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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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어 왕.맥베스
    10점

    <맥베스>와 <리어왕>은 죄의 백과사전이다.
    오만, 거짓, 기만, 배신, 고문, 불륜, 질투 등이 작품 전반에 흘러넘친다.
    위대한 희곡 두 편을 숨가쁘게 끝낸 뒤 남는 여운이란 마치 거대한 오페라의 비극이 끝났음을 알리는 커튼콜처럼 허탈하다.
    이 두 작품을 하나로 묶어서 발행하는 출판사도 있는데 그 이유는 간사한 혀놀림에 놀아나 종국에는 비극적인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인간의 나약함을 묘사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맥베스>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승승장구하는 미래를 꿈꾸고 있는 장군 맥베스에게 세마녀가 나타나 간사한 왕위예언을 하며 칭송한다.
    마녀들의 예언과 멕베스 아내의 간사한 부추김에 떠밀려 멕베스는 포크로 도너츠를 찍듯이 던킨왕을 죽인 뒤 왕위에 오르고 왕족을 몰살하게 된다.
    이로 인해 피는 피를 부르고 죄를 숨기기 위해 자꾸만 걷잡을 수 없는 살인의 유혹에 빠져들고 만다.
    급기야 정신이 혼탁해지고 귀족들에게 미움을 사게 된다.
    결국 망명한 왕자들의 반란과 영국군의 도움으로 멕베스는 참혹한 결말을 맞게 된다.
    <리어왕>에서는 듣기 좋은 말로 왕을 속이는 첫째와 둘째 딸에게 모든 재산을 나눠주고 정직한 막내딸 코딜러어는 국외로 추방해버리는 리어왕이 등장한다.
    그는 신조차 두렵지 않을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큰 권세를 가진 지배자였지만 신은 아니었다.
    자신의 성공으로 동반해서 얻게 된 자만심이 그의 눈을 어둡게 만들었다.
    결국 리어왕은 주변 충신들마저 모두 죽이거나 국외로 추방해버린다.
    왕의 재산을 물려받은 두 딸은 오히려 심한 학대로 왕을 비참하게 만들고, 결국 왕은 막내딸을 찾아 떠날 수 밖에 없게 된다.
    자신이 무참하게 내버린 그 딸에게 말이다. 프랑스 왕비로 살고 있는 코딜리어는 아버지를 불행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 영국으로 가지만 구하지 못한다. 자신이 망친 인생을 대체 누가 돌려놓는단 말인가. 그건 아마 헐리우드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바라보는 인생에서 인간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하며, 이를 어기는 경우 신은 그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
    결국 코딜리어는 포로가 되어 비참하게 살해 되고, 막내딸의 시체를 부여잡고 침통해 하는 리어왕 역시 고통과 울분을 삭이지 못한 채 심장이 터져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두 딸 역시 복수에 눈이 먼 글로스터 백작의 아들 에드먼드에게 동시에 버림을 받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잔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내용 하나하나가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극을 치닫는 대사와 설정으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것 또한 우리 현실이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오히려 현실이 더 희곡같은 경우도 많이 있다.
    오히려 현실은 용서가 없고 중재자도 없고 모든 것을 스스로가 감내해야 하기 때문에 더 무섭다.
    더 갖고자 하는 욕심,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오만함은 화를 부른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달은 순간은 너무 늦다.

    가끔 일을 하다보면 같은 직원끼리 인데도 해당 팀 간의 업무 공유가 안돼서 난처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 올림피아드 행사와 독서지도사 자격검정이 같은 날로 잡혀서 지역센터와 교육사업팀 전체가 일대 혼란에 빠진 일이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공유가 안돼고 업무를 조정할 수 없는 구조를 누가 만들었는가?
    왜 우리는 충신 캔트의 쓴 말을 경청하지 않고 국외로 추방해버리는 리어왕일 수 밖에 없는가.
    리어왕을 비참하게 죽도록 만든 것이 누구인가? 딸들인가, 사위인가, 에드먼드인가, 신인가, 악마인가 ...

    죄에도 종류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죄는 알고 저지르는 죄와 모르고 저지르는 죄로 나누어볼 수 있겠다.
    고너릴, 리건, 에드먼드 그리고 맥베스의 아내는 모든 죄를 알고 저질렀다.
    그들은 친족을 배신한 죄로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 있을 것이다.
    눈을 감지 못해 고이는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고 얼어버려 눈을 찌르는 고통을 영원히 감내하고 있을 것이다.
     
    리어왕, 글로스터, 코딜리어 그리고 맥베스는 모르고 죄를 저질렀다.
    성공한 왕과 장군, 어리석은 아버지 또는 남편, 진실한 딸은 오만하게도 자신만이 옳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눈이 멀었고 죄를 지었다.
    남을 탓하는 것은 지옥에서는 별 의미 없어 보인다.

    서자의 꾐에 빠져 친아들을 파면하고 결국 자신마저 눈을 잃은 채로 추방당하게 된 글로스터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가야할 길도 없는데 눈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 볼 수 있을 때에도 걸려 넘어졌지.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가지고 있어서 오만해지는 것이란 완전히 잃어버리면 오히려 이득이 되는 법이지” (리어왕, 4막 1장) 리어왕과 맥베스를 통해서 내 모습을 반추해본다.

    작은 성공에 오만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나보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하대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인내하고 반성하는 삶만이 유일한 지혜가 아닐까.
    <키다리아저씨>에서 주인공 주디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고 사람들이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하는 이유가 있다더라고 감탄하며 키다리아저씨에게 편지 쓰는 장면이 나온다.
    이제야 비로소 주디의 편지가 내게 도착한 느낌이다.
    http://bookaholic.kr2011-09-29T08:37:37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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