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중에서 대심문관

    2012. 6. 25.

    by. 셰익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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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 작품에서도 역시 서문을 빼놓을 수는 없거든, 이를테면 문학적인 서문이라고나 할까, 하, 하!”

    이반은 웃었다.
    “이거 뭐 내가 굉장한 작가라도 된 것 같구나! 그건 그렇고 내 극시의 무대는 16세기지. 

    그건 마침 ( 하긴 너도 학교에서 배워 잘 알고 있겠지만) 詩作 속에서 천상의 신비로운 힘을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유행하던 시대였어. 

    단테까진 끌어낼 필요도 없이, 프랑스에서는 재판소의 서기니 수도원의 수도사니 하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연극을 보여주곤 했는데, 그건 주로 마돈나니, 천사니, 성도니, 그리스도니, 심지어 하느님 자신까지도 무대에 끌어내는 것들뿐이었지. 그 당시는 이 모든 것이 아주 단순하게 취급되고 있었거든.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 속에는 루이 시대에 왕자 탄생 축하를 위해 파리 시 의사당에서 <그지없이 신성하고 자비로우신 동정녀 마리아의 공정한 재판>이라는 표재의 교훈극이 백성들을 위해 무료로 공개되었다는 사실이 적혀 있고, 이극에서는 성모께서 직접 무대에 나타나서 그 공정한 재판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그리고 우리 러시아에서도 뾰뜨르 대제 이전의 모스크바에서 주로 구약에서 취재한 비슷한 연극들이 가끔 상연되곤 했었지. 이런 연극 이외에도 그 당시에는 여러 가지 소설이며 <종교시>가 세상에 나와 있었는데, 그 속에서는 성도니, 천사니 하는 천상의 주인공들이 필요에 따라 활약하고 있었어. 러시아의 수도원에서는 역시 번역을 한다든가, 남의 것을 베낀다든가, 그 중에는 창작에까지 손을 댄 사람도 있었는데, 그것이 따따르의 침입 시대였으니 더욱 놀랄 일이지, 여기에는 단테에 못지않은 대담한 장면들이 수없이 많아. 성모 마리아가 대천사 미카엘의 인도를 받아 지옥의 고뇌 속을 편력하면서 수많은 죄인과 그들의 고통을 목격한다는 줄거리지, 그 속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불바다 속에 떨어진 한 무리의 죄인들이야. 그들 중에는 영원히 다시 떠오를 수 없을 만큼 바다 속 깊이 빠진 자도 있는데 그들은 <하느님한테서도 버림받은>존재들이지. 이건 정말 심각하고 박력이 넘쳐흐르는 표현이야. 여기서 성모 마리아는 깜짝 놀라 슬픔에 잠기면서 하느님 앞에 부복하고 지옥에 떨어진 모든 사람 - 자기가 지옥에서 목격한 모든 사람 - 에 대해 고루 평등하게 자비를 내려주십사고 탄원했어.
    성모와 하느님 사이의 이 대화는 참으로 흥미진진한 데가 있어. 성모는 탄원에 탄원을 거듭하며 하느님 앞을 떠나질 않는 거야. 하느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자기 아들 그리스도의 손과 발을 가리키며,  ‘저렇게 잔인한 짓을 한 자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으리오?’ 하고 성모한테 물었어. 그러자 성모는 모든 성자, 모든 순교자, 모든 천사, 모든 대천사들을 향해 자기와 함께 하느님 앞에 부복하여 모든 사람의 죄의 사면을 기원하자고 부탁했지. 그래서 결국 성모는 매년 금요일에서 성령 강림제까지의 50일간, 모든 고난을 중지한다는 허가를 받게 되었어. 이때 지옥의 죄인들은 하느님께 감사하며, ‘주여 그대의 재판은 옳았나이다!’하고 외치는 거야.


    그건 그렇고, 나의 극시도 그 당시에서도 그리스도가 무대에 나타나지.
    그러나 그저 나오기만 할 뿐, 한마디의 말도 없이 그대로 지나가 버리고 마는 거야.
    그때는 그가 지상을 자기 왕국으로 만들어 다시 출현하겠다고 약속한 후 15세기나 지났을 때야.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이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마태복음 24장 36절) 이렇게 썼고, 또 그리스도 자신도 이 지상에 살아 있을 때 같은 말을 했지만, 그때부터 이미 15세기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여전히 같은 신앙, 같은 감격을 가지고 그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는 거야. 아니, 그때보다 더 큰 희망을 가지고 있어. 왜냐하면, 하늘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보증이 단절 된 후 이미 15세기라는 세월이 흘러 버렸으니 말이야. <믿어라, 마음의 속삭임을 하늘의 보증이 없더라도.> 즉, 마음의 속삭임을 믿지 않을 수 없었던 거지! 하긴 그 당시만 해도 많은 기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야. 기적적인 치료를 행한 성자도 있었고, 전기에 의하면, 성모의 방문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지. 그러나 악마도 낮잠을 자고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이런 기적의 진실을 의심하는 자들이 인류 속에 나타나기 시작했지. 바로 그 무렵 북방 게르마니아에 무서운 사교가 발생했어. <불붙는 큰 산과 같은>(즉 교회와 같은) 큰 불 하나가 <水源에 떨어져 맛이 써졌다>(요한의 묵시록 8.10.11장) 그 말이지. 이들 사교는 신을 모독하며 기적을 부정하기 시작했어. 그러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열렬히 믿었지. 인류의 눈물은 여전히 변함없이 그리스도를 향해 하늘로 올라갔고,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희망을 걸고 그리스도를 위해 고통을 겪으며 죽어 가기를 갈망하고 있었어. 이렇게 몇 세기에 걸쳐 인류는 신앙과 열정을 가지고  ‘오주여, 우리에게 모습을 나타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애타게 불렀으므로, 그지없이 자비로우신 그리스도는 마침내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한테 내려가기로 생각하게 된 거야. 그전에도 그는 천국에서 내려와, 그때까지 이 지상에 살고 있던 모든 의인이며, 순교자며, 성스러운 은둔자들을 방문한 일이 있는데, 이것은 그들의 전기에도 기록되어 있어. 우리 러시아에서도 자기 말의 진실을 깊이 믿고 있던 G체프는 이렇게 노래한바 있어.


     <십자가의 무거운 짐에 허덕이면서 하느님의 아들이 노예가 되어 어머니인 대지를 축복하고자 두루 온 누리를 다니시도다.>


    이건 정말 그랬을 거야. 나도 그건 보증해. 결국 그래서 그리스도는 잠깐만이라도 좋으니 민중한테 내려오기로 작정하신 거겠지.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어둠의 죄에 싸여 있으면서도, 젖먹이처럼 순진하게 자기를 흠모하는 민중한테로 말이야. 그러나 내 극시는 스페인의 세빌랴를 무대로 하고 있어.
    그리고 그 시대는, 신의 영광을 위해 날마다 국내에서 장작더미가 불타오르던 그 무서운 심문시대에 속해 있지.
    <활활 타오르는 화형장에서 사악한 이단자가 불타 죽도다.>
    그러나 물론 이 강림은, 그가 전에 약속했던 것처럼 천국의 영광에 싸여 이 세상이 끝나는 날에 출현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거야. 결코 동쪽에서 서쪽까지 비치는 번갯불처럼 나타나는 건 아니니까. 그리스도는 그저 잠시 동안만이라도 좋으니 자기 자식들을 방문하고 싶었던 거야. 그리하여 특히, 이단자들을 불태우는 불길이 요란하게 타오르는 바로 그 땅을 택하신 거지.
    그지없이 자비로우신 그리스도는 15세기 전에 3년간 사람들 사이를 편력하실 때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 한 번 민중 속에 나타나신 거야. 그리스도는 남쪽 도시의 <뜨거운 광장>에 내려왔는데, 마침 그때는, 활활 타오르는 화형장에서 거의 백 명에 가까운 이단자들이, 하느님의 크나큰 영광을 위해 국왕을 비롯하여 대신, 기사, 추기경, 아름다운 궁녀들과 세빌랴의 수많은 시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대심문관인 추기경의 지휘 아래 한꺼번에 처형당한 바로 그 이튿날 이었어.
    그리스도는 눈에 띄지 않게 살그머니 모습을 나타냈어. 그러나 사람들은 <실로 기이한 일이지만> 그분이 그리스도란 것을 순식간에 알아챘단 말이야. 바로 여기가 내 극시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대목 가운데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테지. 즉 어떻게 민중이 그를 알아보았느냐 하는 점이 재미있거든. 민중은 억누를 수 없는 강력한 힘에 이끌려. 그리스도를 향해 밀려가서 순식간에 그를 에워싸고 그의 뒤를 따라가는 거야. 사람은 갈수록 늘어만 가지만, 그리스도는 그지없이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말없이 군중 속에 걸어가고 있었어. 사랑의 태양이 그의 가슴 속에 타오르고, 광명과 힘의 광선이 그 눈에서 흘러나와 사람들 위에 넘쳐흐르면서 그들의 마음을 보답하는 사랑으로 떨게 하는 거야.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두 손을 뻗어 축복을 내렸는데 그 자신의 몸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옷자락에 닿기만 해도 모든 병을 고치는 힘이 솟아나는 거야.
    이때 어릴 때부터 장님이 된 어떤 노인이 군중 속에서
    ‘주여, 눈을 뜨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면 저도 주님을 뵈올 수 있겠나이다’하고 외쳤어.
    그러자 곧 마치 그의 눈에서 비늘이라도 떨어져 나간 듯이 장님은 눈을 뜨게 되었어.
    군중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그가 밟고 지나가는 땅에 입을 맞추는 거야.
    아이들은 그의 앞에 꽃을 던지고 노래하며 ‘호산나!’라고 외치고
    사람들은 ‘이 분은 예수님이셔, 틀림없는 예수님이셔’하고 되풀이 했어.
    ‘예수님이 틀림없어, 예수님이 틀림없다니까!’
    그는 세빌랴 성당 현관 앞에 걸음을 멈췄는데, 마침 이때 뚜껑을 덮지 않은 하얀 조그만 관이 통곡소리와 함께 성당으로 운반되어 들어오고 있었어. 그 관속에는 어느 유명한 시민의 외동딸인 일곱 살 난 소녀의 시체가 꽃에 파묻혀 누워 있는 거야. ‘저분은 당신의 딸을 소생시켜 주실 거요.’
    비탄 속에 잠겨 있는 어머니에게 군중 속에서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어.
    관을 맞으러 나온 신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거야.
    갑자기 이때 죽은 아이의 어머니의 외침 소리가 울려 퍼졌어.
    여인은 주님의 발밑에 몸을 던지고는
    ‘만약에 당신이 예수님이시라면 내 딸을 다시 소생시켜 주십시오.’ 하고 주님께서 두 손을 뻗치며 외쳤지.
    장의 행렬은 멈춰서고, 관은 그의 발밑 현관 층계에 내려졌어.
    그리스도는 연민하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어 <달리다꿈><소녀여 일어나거라>를 다시 한 번 되풀이 했어.
    그러자 소녀는 관 속에서 일어나 앉더니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방실방실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는 거야.
    그 손에는 관에 눕힐 때 쥐여졌던 백장미의 꽃다발이 그대로 쥐어져 있었어. 군중 사이에서는 동요와 절규와 통곡이 일어났어.
    바로 이때 성당 옆 광장을 대심문관인 추기경이 지나가고 있었어.
    이 대심문관은 나이가 거의 구십에 가까웠지만 키가 크고 허리가 꼿꼿했으며, 여윈 얼굴에 눈은 우묵 파여 있었지만, 아직도 두 눈에는 불꽃과 같은 광채가 번쩍이는 노인이었지.
    그는 어제 로마 교회의 적들을 불태울 때, 민중 앞에 입고 나왔던 찬란한 추기경 복장이 아니라 낡아빠진 허름한 법의를 걸치고 있었어. 그 뒤에는 우울한 얼굴을 한 보좌관들, 노예들, 그리고 <성스러운> 호위병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오고 있었지.
    대심문관은 군중 앞에 걸음을 멈추고 멀리서 그를 바라보는 거야.
    모든 것을 다 보았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발밑에 관을 내려놓는 것도 보았고, 소녀가 다시 살아나는 것도 보았어. 그러자 그의 두 눈은 불길한 불꽃을 튕기기 시작했어. 그는 호위병에게 손가락을 쳐들어 보이며, 저자를 체포하라고 명령했지. 그의 권세는 너무나 강하여, 그의 명령이라면 누구나 벌벌 떨며 순순히 복종하도록 길들여져 있었으므로 군중은 호위병들에게 얼른 길을 비켜 주었어. 그리하여 별안간 내습한 무덤과 같은 침묵 속에서 호위병들은 그를 잡아끌고 갔지. 군중은 마치 한 사람의 인간이 움직이듯 일제히 늙은 심문관 앞에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는 거야.
    심문관은 말없이 군중에게 축복을 주고 그 자리를 떠났어.
    호위병은 이 죄인을 신성재판소의 낡은 건물 앞에 있는 어둡고 좁다란 원형 천장의 감방으로 끌고 가서 굳게 자물쇠를 잠가 버렸어.
    날이 저물어 어둡고 어두운 <죽음과도 같은 세빌랴의 밤>이 찾아왔어. 대기는 <월계수와 레몬의 향기>로 가득 차 있었지.
    그런데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갑자기 감방의 철문이 열리더니, 늙은 대심문관이 손에 등불을 들고 감방으로 들어오는 거야.
    그는 혼자 들어왔는데, 들어오자 감방 문은 곧 닫혀 버렸어.
    그는 문 옆에 선채 1,2분 동안 그리스도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더니, 이윽고 조용히 다가와서 탁자 위에 등불을 내려놓고 이렇게 묻는 거야.
    “너는 정말 그리스도냐? 네가 그리스도냐 말이다?” 그러나 대답이 없자 그는 얼른 말을 이었어.
    “대답 안 해도 좋다. 잠자코 있어도 좋아. 하긴 대답할 말도 없을 테지! 나는 네가 할 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너는 지금껏 말한 것 이외에, 아무것도 덧붙일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해. 대체 왜 우리를 방해하러 왔느냐? 너는 정말 우리를 방해하러 온 거지. 그건 너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러나 너는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 알고 있느냐? 나는 네가 누군지도 모르고, 또 알고 싶지도 않다. 네가 진짜 그리스도건 가짜건 그건 아무래도 좋아. 어쨌든 나는 내일 너를 재판에 회부하여 극악무도한 이단자로서 화형에 처해 버리고 말테다. 그러면 오늘 너의 발에 입을 맞춘 민중이, 내일은 내가 손가락을 놀리김 해도 네가 불타고 있는 모닥불 속에 앞을 다투어 장작을 던져 넣을 거다. 그걸 너는 아느냐? 아마 너도 그건 알고 있을 테지.”
    대심문관은 한시도 죄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이렇게 덧붙였어.

    “나는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형님, 도대체 그건 무슨 뜻입니까?”
    시종 말없이 듣고만 있던 알료사는 미소 지으며 이렇게 물었다.
    “그건 터무니없는 망상인가요? 아니면 그 노인의 오해인가요? 그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모순당착 아닙니까?”
    “그럼 그 마지막 거라고 해도 괜찮다.”이반은 웃었다.
    “네가 현대의 현실주의자에 물들어 공상적인 요소는 조금도 참을 수가 없어서, 그걸 <모순당착>이라고 생각하고 싶다면 그래도 괜찮아”하고 그는 또 웃었다.
    “노인은 이미 아흔 살이 되었으니까 오래 전부터 비정상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더욱이 그 죄수의 용모만으로도 노인은 강한 충격을 받았을 테니 말이야. 아니, 어쩌면 그건 구십 노인의 망상이나 헛소리일지도 몰라. 그리고 또 어제 백 명이나 되는 이단자들을 화형에 처했기 때문에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그러나 너한테나 나한테나, 그것이 <모순당착>이건 터무니 없는 망상이건 결국 매한가지지 뭐냐? 요컨대 노인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을 몽땅 내뱉고 싶었을 뿐이야. 90년 동안 말하지 않고 있던 것을 입 밖에 내서 말한 것뿐이니까.”

    “그런데도 죄수는 여전히 가만히 있는 겁니까?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나요?”
    “그야 물론 그럴 수밖에 없지, 어느 경우에든.”
    이반은 다시 웃기 시작했다.
    “노인 자신도, 그리스도는 옛날에 자기가 말한 것 이외에 무엇 하나 덧붙일 권리가 없다고 단언하고 있으니 말이야.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바로 여기에 로마 가톨릭의 가장 근본적인 특질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할 수 도 있을 것 같아. ‘너는 이미 모든 것을 교황에게 넘겨주지 않았느냐 말이다. 따라서 지금은 모든 것이 교황의 수중에 있는 거야. 그러니 이제는 제발 나타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어. 적어도 어느 시기가 올 때까지는 방해를 말아 주게’라고 말하는 거야. 그들은 이런 말을 입으로만 뇌까리는 게 아니라 책에까지 쓰고 있어. 적어도 예수회 친구들은 말이야. 나도 예수회 신학자가 쓴 책을 읽은 적이 있어.
    ‘도대체 너는 네가 방금 떠나온 저 세계의 비밀을 단 한 가지라도 우리에게 전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대심문관은 그리스도한테 이렇게 묻고는 곧 자기가 대신해서 대답하는 거야.
    ‘아니 조금도 그럴 권리는 없어. 그건 네가 옛날에 한 말에 무엇 하나 덧붙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또한 네가 이 지상에 있을 때 그처럼 강력히 주장했던 자유를 민중에게서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도 그렇지. 네가 지금 새로이 전하려고 하는 것은, 모두가 민중의 신앙의 자유를 위태롭게 하는 것뿐이야. 왜냐하면 그것이 기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지. 그런데 민중의 자유는 이미 1천 5백 년 전인 그 당시부터 너에게는 가장 귀중한 것이 아니었느냐 말이다.
    그 때 <내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입버릇처럼 말한 것은 바로 네가 아니었느냐 말이다.
    그런데 너는 지금 그들의 <자유로운> 모습을 보게 된 거야.’생각에 잠긴 듯 한 미소를 때며 노인은 갑자기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어. ‘사실 우리는 이 사업을 위해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렀는지 모른다.’ 준엄한 눈초리로 상대방을 노려보며 노인은 다시 말을 이었어. ‘그러나 우리는 너의 이름으로 마침내 이 사업을 완성했다고 해도 믿지를 않겠지? 너는 상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화를 낼 가치조차 없다는 듯 한 표정이구나.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어라 - 민중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자기들이 완전히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 자유를 그들은 자진해서 우리에게 바친 거야. 겸손하게 우리의 발밑에다 그것을 갖다 바쳤단 말이다.
    그리고 그걸 완성한 건 바로 우리란 말이다. 네가 원한 것은 바로 이런 자유가 아니었을 게다!”

    “무슨 말인지 또 모르겠군요.” 알료사가 형의 말을 또 가로챘다.
    “노인은 비꼬아 말하는 겁니까, 비웃는 겁니까?”

    “결코 그렇지 않아. 그들이 마침내 자유를 정복하여 민중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는 것을 자기와 자기 동료의 공적이라 생각하고 있는 거야. ‘왜냐하면 이제야 비로소 (그는 물론 심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민중의 행복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가 반역자로서 창조되었지만, 반역자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너는 여러 번 경고를 받았어’ 하고 노인은 그리스도에게 말하는 거야. ‘너는 경고와 주의를 받음에 부족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경고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고,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거절하지 않았느냐 말이다. 그러나 다행이도 너는 이 세상을 떠날 때 자기 사업을 우리에게 넘겨주고 떠났어. 너는 그것을 네 입으로 확실히 약속했고, 인간을 묶고 풀고 하는 권리를 넘겨주었어. 그러니까 너는 이제 와서 그 권리를 우리한테서 빼앗아 갈 수는 없단 말이다. 그런데도 도대체 무엇 때문에 너는 우리 일을 방해하러 온 거냐?”

    “경고와 주의를 받음에도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이죠?” 하고 알료사가 물었다.

    “바로 그것이 심문관이 말하려는 가장 중요한 대목이야. ‘무섭고도 지혜로운 악마가,’하고 노인은 말을 이었어.
    ‘자멸과 허무의 악마가 광야에서 너하고 말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지. 성경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 악마가 너를 <시험>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게 사실인지? 그러나 그 악마가 세 가지 물음으로 너한테 고했던 말, 너한테 거절당했던 말, 성경에서 <시험>이라 불리는 그 말보다 더 진실한 말이 과연 어디 있겠는가?
    만약에 언젠가 이 땅에서 정말로 위대한 기적이 이루어진 때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 세 가지 시험의 날에 지나지 않는 거야. 즉 이 세 가지 시험 속에 다름 아닌 기적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지. 가령 여기서, 이 무서운 악마의 세 가지 물음이 성경 속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려서, 또다시 그것을 성서에 써넣기 위해 새로이 고안하여 창작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것을 위해 세계의 모든 현자들  정치가? 성직자? 학자? 철인? 시인 등을 모아놓고 <이 세 가지 물음을 고안해 만들어 다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사건의 위대성에 적응해야 할 뿐더러 불과 세 마디의 말, 세 마디의 인간의 말로, 전 세계와 전 인류의 미래사를 남김없이 망라해서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과제를 주었다고 하자.
    이런 경우, 전 세계의 전지전능을 한데 묶어 짜내 본다 하더라도 그 힘과 깊이에서 강하고도 현명한 악마의 광야에서 너한테 던지 세 가지 질문에 필적할 만한 것을 과연 그들이 짜낼 수 있을 것인가? 너도 그런 것쯤은 알고 있을 테지.
    이 세 가지 물음만으로 판단하더라도, 그 실현의 기적만으로 판단하더라도, 변하기 쉬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영원하고도 절대적인 영지를 상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 판명되지 않느냐 말이다. 왜냐하면, 이 세 가지 물음 속에 인간의 전 미래사가 하나의 완전한 모양으로 집약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상에 있어서의 인간성의 역사적 모순을 남김없이 집약한 세 가지 형태가 나타나 있기 때문이지. 그야 물론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때만 해도 이런 것은 잘 몰랐을 테지만, 그로부터 15세기라는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 와서는, 이 세 가지 물음 속에 무엇 하나 증감할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이 예언되었고, 또 그 예언대로 모두 맞아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지 않느냐 말이다. 도대체 어느 쪽 말이 옳은가 너 자신이 판단해 봐라. 네가 옳은가, 아니면 그때 너를 시험한 자가 옳은가?


    첫째 질문을 상기해 보라. 말은 좀 다를는지 몰라도 뜻은 이런 거니까
    <너는 지금 세상으로 나가려 하고 있다. 그것도 자유의 약속이니 뭐니 하는 걸 가졌을 뿐 맨손으로 나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원래가 어리석고 비천한 민중은 그 약속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두려워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나 인간 사회에 있어서 자유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없으니까! 이 메마른 벌거숭이 광야에 뒹구는 돌들을 보라, 만일 네가 이 돌을 빵으로 만들 수 없다면 전 인류는 유순하고 점잖은 양떼처럼 너의 뒤를 따르리라. 그리고 네가 혹시 빵을 주지 않지나 않을까 하여 끊임없이 전전긍긍하리라.>
    그러나 너는 민중한테서 자유를 빼앗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이 제의를 거부해 버렸던 거다.
    너의 생각으로는 만약에 그 복종이 빵으로 살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거기 자유가 존재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때, 너는 <사람은 빵만으론 살수 없다>고 대답했지만, 그러나 다름 아닌 그 빵의 이름으로 이 지상의 악마가 너한테 반기를 들고 너하고 싸워 승리를 거두고, 모든 사람들은 <이 짐승을 닮은 자야말로 하늘에서 불을 훔쳐다가 우리에게 준 자다>라고 부르짖으면서 그 악마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것을, 너는 모르느냐?
    수백 년이 지난 후에 인류는 자기의 지혜와 과학의 입을 빌어 <범죄라는 것도 없고 따라서 죄악이라는 것도 없다. 다만 굶주린 인간이 있을 뿐이다>라고 공언하게 되리라는 걸 너는 모르는가?
     <먼저 먹을 것을 달라. 그러고 나서 선행을 요구하라!> 이렇게 쓴 깃발을 치켜들고 사람들은 너를 반대하여 폭동을 일으킬 거다. 그리고 그 깃발이 너의 신전을 파괴해 버리는 거다. 그리하여 너의 신전이 서 있던 자리엔 새로운 건물이, 다시금 그 무시무시한 바벨탑이 세워지는 거다. 물론 옛날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 탑도 완성되지는 못할 것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너는 이 새로운 탑의 건설을 회피해서 세상 사람들의 고통을 천 년은 줄일 수 있었던 거다. 왜냐하면 그들은 천 년 동안 그 탑을 세우느라고 고생한 끝에, 결국은 우리한테 되돌아온 것임이 분명하니까! 그때 그들은 또다시 땅 속 묘지 안에 숨어 있는 우리들을 찾아낼 거다. (그때는 우리가 또다시 박해를 받아 고통을 겪고 있을 테니까) 그들은 우리를 찾아내서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시오. 우리에게 천국의 불을 훔쳐 주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거짓말을 했습니다.>라고 외칠 테지  그때 우리는 비로소 그들의 탑을 완성시켜 줄 거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자만이 그 탑을 완성시킬 수 있는데 바로 우리가 너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의 이름으로라는 건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 거다. 사실 우리가 없으면 그들은 영원히 먹을 것을 얻을 수 없단 말이다! 그들이 자유를 누리고 있는 한 어떤 과학도 그들에게 빵을 줄 순 없는 거야! 그러나 결국에 가서는 그들도 자기의 자유를 우리의 발밑에 갖다 바치고, <우리를 노예로 삼아도 좋으니 제발 먹을 것을 주십시오> 하고 탄원할 게 틀림없어.
    즉 자유와 빵은 어떠한 인간에게도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 자신이 깨닫게 되는 거지. 자기네들끼리 그것을 공평하게 분배할 수는 도저히 없으니까! 또한 그들은 자기네들끼리 그것을 공평하게 분배할 수는 도저히 없으니까! 또한 그들은 자기네들이 너무나 무력하고 너무나 악할 뿐만 아니라 한 푼의 값어치도 없는 반역자들이기 때문에 절대로 자유를 누릴 수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될 테지, 너는 그들에게 하늘의 양식을 약속했지만, 다시 되풀이해 말하건대, 그 무력하고도 죄 많은 비천한 인간들의 눈으로 볼 때, 과연 하늘의 빵이 땅 위의 빵만 할 수 있겠느냐 말이다? 설사 수천수만의 인간이 하늘의 빵을 얻기 위해 너의 뒤를 따른다 하더라도, 하늘의 빵을 위해 지상의 빵을 멸시할 수 없는 수백만 수천만의 인간은 대체 어떻게 된다는 거냐? 아니면, 너에게 위대하고 강력한 의지를 지닌 수만 명의 인간만이 귀중할 뿐, 약한 의지를 가지긴 했지만, 너를 사랑하는 수백만 명의 인간들은, 아니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수없이 많은 인간들은 위대하고 강력한 의지를 지닌 인간을 위한 소재 노릇을 해야 한단 말이냐? 아니, 우리에겐 무력한 인간도 귀중하다. 그들은 방탕한 반역자들이긴 하지만, 나중에 가선 오히려 이런 인간들이 온순해지니까, 그들은 우리를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고 우리를 신으로 받들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의 선두에 서서, 그들이 그처럼 두려워하는 자유를 달갑게 참고, 그들 위에 군림할 것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침내 자유롭게 된다는 것을 가장 큰 공포로 여기게 될 거란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 역시 그리스도의 종이며, 너희들 위에 군림하는 것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다시금 그들을 기만할 것이지만, 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우리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할 테니까 문제될 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 기만 속에 바로 우리의 고민이 있는 거야. 왜냐하면 우리는 영원히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광야에서의 첫째 물음은 바로 이런 뜻을 지니고 있는 거야.
    너는 네 자신이 무엇보다도 가장 존중하는 자유 때문에 그것을 물리쳐 버렸어.
    그 밖에도 이 물음 속에는 현세의 위대한 비밀이 숨어 있지. 만약에 네가 <지상의 빵>을 받아들였더라면, 개개의 인간 및 전 인류의 영원하고도 공통적인 번민에 대하여 해답을 줄 수 있었을 거다.
    그것은 <누구를 숭배할 게냐?>하는 의문이지. 자유를 누리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괴롭고 해결하기가 어려운 문제는 한시바삐 자기가 숭배할 인물을 찾아낸다는 거야. 그런데 인간은 틀림없이 숭배할 만한 가치를 지닌 대상만을 찾고 있어.
    만인이 다 같이 그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는, 틀림없는 대상을 찾고 있는 거야. 왜냐하면 이 가련한 생물들은 그들 각자가 숭배할 대상을 찾을 뿐만 아니라, 만인이 신앙하고 만인이 다 함께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그런 대상을 찾기 때문이지. 이러한 공통적인 숭배의 요구야말로 세상이 시작된 그날부터 개개의 인간 및 전 인류의 가장 근본적인 고민거리가 되어 왔다. 숭배의 공통성이라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칼을 휘두르며 싸워 왔어.
    그들은 자기네 신을 창조해 가지고 서로 자기 쪽으로 불러 들였어.
    <너희들의 신을 버리고, 우리의 신 앞에 무릎을 꿇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도 너희들의 신도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고.
    이러한 상태는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니 이 세상에서 신이라는 신이 모두 소멸될 그때까지 계속 될 거다.
    신이 없으면 그들은 우상 앞에라도 무릎을 꿇을 테니까. 너는 인간 본성의 근본적인 비밀을 알고 있었을 테지, 아니 몰랐을 리가 없어. 그런데도 너는 모든 인간을 무조건 네 앞에 무릎을 꿇게 하기 위하여, 악마가 너한테 절대적인 권한 유일무이한 깃발,
    즉 지상의 빵이라는 깃발을 물리쳐 버렸어. 더욱이 하늘의 빵과 자유의 이름으로 물리쳐 버리지 않았느냐 말이다.
    그리고 또 네가 무슨 일을 했는지 생각해 봐라. 너는 걸핏하면 자유라는 이름을 내걸었어! 다시 말하지만, 인간이라는 가련한 생물들에겐, 타고난 자유라는 선물을 넘겨 줄 사람을 한시바삐 찾아내야만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란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자유를 지배할 수 있는 자는 그들의 양심을 편안케 해줄 수 있는 자에 한하는 거야. 네겐 빵이라는 절대적인 깃발이 주어졌으니까, 빵을 주기만 하면 사람들은 네 발밑에 엎드릴 게다. 왜냐하면 빵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으니까.
    그러나 만일 그때 누구든 너 이외에, 인간의 양심을 지배하는 자가 나타나면, 오오, 그 때는 너의 빵을 버리고서라도 인간은 자기의 양심을 사로잡는 자의 뒤를 따를 것이 틀림없어.
    이 점에 있어선 너도 옳았어. 왜냐하면 인간 생활의 비밀은 그저 사는 것뿐만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사느냐 하는 데 있기 때문이지. 무엇 때문에 사느냐 하는 확고한 관념이 없다면, 비록 주위에 빵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더라도 인간은 살기를 원치 않으면서, 이 지상에 남아 있기보다는 차라리 자살을 택할 것임에 틀림없어.
    이건 그렇다 치고, 실제는 어떤가? 너는 인간의 자유를 지배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큰 자유를 그들에게 주지 않았느냐 말이다! 그래 너는, 인간이 선악의 의식에 있어서의 자유로운 선택보다는 평안함을(때로는 죽음까지도) 더욱 귀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잊었느냐? 그야 물론, 인간에겐 양심의 자유보다 더욱 매혹적인 것은 없지만, 그러나 그것보다 더 괴로운 것도 없다. 그런데 너는 인간의 양심을 영원히 평안케 할 확고한 근거를 주지 않고 그 대신 이상하고 수수께끼처럼 아리송한 인간의 힘에 겨운 것들만을 그들에게 주었다. 따라서 너의 행위는 인간을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고 만 거다. 도대체 그런 행위를 한 것은 누구냐 말이다. 그건 다름 아닌 인류를 위해 자기 생명을 내던진 네가 아니냐! 너는 인간의 양심을 지배하는 대신에, 오히려 그 양심을 증진시켜, 그 괴로움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마음의 왕국에 영원히 무거운 짐을 지워주지 않았느냐 말이다. 너는 너에게 유혹되어 사로잡힌 인간이 자유의지로서 너를 따라올 수 있도록 인간의 자유로운 사랑을 바랐다. 그 결과 인간은 확고한 고대의 율법을 물리치고, 그 후부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를 자유 의지에 따라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거다. 게다가 지도자라고는 그들 앞에 너의 모습밖엔 없었던 거야. 그러나 너는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보진 않았느냐? 만일 선택의 자유라는 무서운 짐이 인간을 압박한다면, 그들은 네게 등을 돌리고 너의 모습도, 너의 진리도 배척하게 되리라는 것을? 왜냐하면 너는 그처럼 많은 걱정거리와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들을 그들에게 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혼란과 고통 속에 남아 있게 했기 때문이지. 사실 그 이상으로 잔인하기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니까.
    이렇게 너는 스스로 자기 왕국의 붕괴의 기초를 만들어 놓았으니 누구를 비난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을 거다. 그렇지만 네가 권고 받는 것은 과연 이런 것이었을까? 

    여기 세 가지 힘이 있다. 즉 이들 무력한 폭도의 양심을 그들의 행복을 위해 영원히 정복하고 사로잡을 수 있는 힘은 이 지상에 세 가지 밖엔 없단 말이다.
    이 세 가지 힘이란 기적신비권위를 말하는 거다.
    너는 이 세 가지를 모두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때 무섭고도 지혜로운 악마가 너를 성전 꼭대기에 세워 놓고 이렇게 말했었지.
    <만약에 네가 하느님의 아들인가 아닌가를 알고 싶거든 여기서 뛰어내려 봐라. 왜냐하면 밑에 떨어져 몸이 부서지지 않도록 도중에서 천사가 받아준다고 책에 씌어 있으니까. 그때 너는 하느님의 아들인가 아닌가를 알게 될 것이고,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너의 믿음의 깊이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는 이 권고를 물리쳤고, 술책에 빠져 밑으로 뛰어내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물론 너는 신으로서의 긍지를 지키며 훌륭히 행동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 그 무리한 폭도의 무리들은 결코 신은 아니다. 오오, 그때 만일 네가 한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서서 뛰어내릴 자세를 취하기만 했더라도, 너는 하느님을 시험한 것으로 되어 당장에 모든 신앙을 잃고, 네가 구원하러 온 그 대지에 부딪쳐서 온몸이 산산이 부서져, 너를 유혹한 그 지혜로운 악마를 기쁘게 해 주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너는 그것을 알고 있었던 거다. 그러나 다시 되풀이하지만, 유혹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다른 사람한테도 있을 것이고 너는 정말 순간적이나마 생각한 적이 있는가? 인간의 본성이란 기적을 부정하게끔 만들어져 있지 않아. 특히 생사에 관한 그 무서운 순간에 - 가장 무섭고 가장 근본적인 가장 괴로운 정신적 의혹의 순간에, 자유로운 양심의 결정만으로 행동할 수 없게 되어 있어.
    너는 자신의 이 언행이 청사에 기록되어 이 땅 끝까지 영원히 전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다른 사람들도 모두 너를 본받아 기적을 구하지 않고 하느님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거야 . 그러나 기적을 부정할 때 인간은 신까지도 함께 부정한다는 것을 너는 몰랐던 거야. 왜냐하면, 인간은 신보다도 오히려 기적을 구하기 때문이지. 인간이란 기적 없이는 살 수 없는 거야. 그래서 그들은 멋대로 기적을 만들어 내고, 마침내는 기도사의 기적이나, 무당의 요술까지도 믿게 되는 거지. 다른 사람보다 몇 배나 더한 반역자이고, 이교도고, 불신자라 할지라도 이점에서는 역시 매한가지란 말이다.
    너는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그럼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걸 믿겠다>라고 희롱했을 때도,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았어. 이때도 역시 인간을 기적의 노예로 삼기를 원치 않고 기적의 구속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신앙을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원히 사람을 놀라게 할 단 한 번의 위력으로 범인의 마음속에 노예적인 환희를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거야. 그러나 너는 인간을 너무 높이 평가했어. 왜냐하면 그들은 원래가 반역자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노예에는 틀림없기 때문이야. 잘 보고 판단해 봐라. 그때부터 벌써 15세기나 지났으니, 네가 자기의 높이에까지 끌어올린 상대가 대체 어떤 존재들인가를 직접 관찰해 봐라. 나는 단언하거니와, 인간이란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약하고 비열하게 만들어져 있어! 도대체 네가 한 것과 같은 일을 인간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토록 인간을 존경했기 때문에 오히려 너의 행위는 그들에게 동정을 품지 않은 것으로 되어 버렸단 말이야. 그것은 네가 그들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야.
    이것이 인간을 자기 자신보다 더욱 사랑한 너의 짓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에 네가 그렇게까지 그들을 존경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그렇게까지 많은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을 게다. 그리고 그쪽이 오히려 사람에 가까웠을 지도 모른다. 즉 그들의 부담이 가벼워질 테니까.
    인간은 원래가 무력하고 비열한 족속이야. 지금 그들은 도처에서 우리의 권위에 대하여 반기를 들고, 또 그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지만 그런 건 문제도 아니야.
    그것은 아이들의 자랑에 지나지 않아. 초등학생들의 자랑에 불과하단 말이다. 그것은 교실에서 소동을 일으켜 선생을 몰아내는 코흘리개 어린애 짓과 다를 것이 없어 이제 아이들의 환희도 사라질 것이고, 그들은 그 환희에 대해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 그리고 마침내는 자기들을 반항아로 만든 자는, 자기들을 우롱하려고 했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어리석은 눈물을 흘리면서 자각하기에 이를 테지. 그들은 자포자기에 빠졌을 때 이런 말을 하지만 일단 입 밖에 나온 말은 그대로 신에 대한 저주가 되기 때문에 그들은 더 불행해질 게 틀림없어.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은 신에 대한 저주를 찾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복수를 할 수밖에 없는 거지.
    따라서 불안과 혼란과 불행 이것이 바로 현재의 인간의 운명이야.
    네가 그들의 자유를 위해 그처럼 고난을 겪고 난 후에도 역시 인간의 운명은 이 모양 이 꼴이란 말이다.
    너의 위대한 요한은 환상과 비유 속에서 부활의 첫날에 참석한 모든 사람을 자기가 보았는데, 그 수는 각 종족마다 각각 1만 2천 명씩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수가 그것밖에 안 된다면, 그들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신이라고 해야 할게다.
    그들은 너의 십자가를 지고 몇 년 동안을 메뚜기가 풀 부리만으로 연명하면서 먹을 것 없는 벌거숭이 광야에서 참고 견디었다.
    그러니까 너는 자유의 아들, 자유로운 사랑의 아들, 너의 이름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위대한 희생을 바친 아들을 자랑스럽게 가리켜 보일 수도 있을 게다. 그러나 그것은 몇 천 명에 불과한, 거의 신이나 다름없는 인간들뿐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도대체 그 나머지 인간들은 어떻게 된다는 건가? 그런 위대한 인간들이 참고 견디어 낸 것을, 그 밖의 약한 인간들이 참아내지 못했다 해서 그들을 책망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와 같은 무서운 선물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여 연약한 영혼들을 책망할 수는 없지 않으냐 말이다?
    아니면 너는 선택된 자들을 위해, 선택된 자들한테 온 데 지나지 않다는 거냐?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곧 신비에 지나지 않는 거다. 그런데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단 말이야.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신비라고 한다면, 우리도 신비를 선정하여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양심의 자유로운 결정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며, 오직 신비가 있을 뿐이다. 모든 인간은 자기 양심에 거역하더라도, 이 신비에 맹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설득할 권리가 있는 셈이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그대로 해 왔다.
    우리는 너의 사업을 수정하여, 그것을 기적과 신비와 교권위에 세워 놓은 거다.
    그러자 민중은 다시 자기들을 양떼처럼 이끌어 줄 사람이 생기고 끝없는 고통의 원인인 그 무서운 선물을 마침내 제거해 줄 때가 온 것을 기뻐했다. 우리가 이렇게 가르치고 이렇게 실행한 것이 옳은 일인지 아닌 지 자 어디 한번 말해 봐! 우리가 솔직히 인간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가련히 여겨 그 무거운 짐을 덜어주고 그들의 연약한 본성을 감안하여 우리의 허락을 얻으면 그들의 죄까지도 용서받을 수 있게 했다면, 우리도 인류를 사랑했다고 할 수 있지 않느냐 말이다!
    도대체 너는 무엇 때문에 이제 우리를 방해하러 나타난 거냐?
    도대체 너는 왜 말 한마디 없이 그 유순한 눈으로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듯이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거냐?
    성을 내겠으면 마음대로 내 봐. 나는 너의 사랑 같은 것은 원하지도 않는다. 나 역시 너를 사랑하고 있지 않으니까.
    게다가 너한테 아무것도 숨길 필요라곤 없어! 네가 어떤 인간이라는 걸 내가 모를 줄 아니?
    너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를 다 알고 있어. 그건 네 눈을 보면 알 수 있지.
    그러나 나는 너한테 우리의 비밀을 감출 생각은 없다. 하긴, 너는 어쩌면 내 입을 통해서 그걸 듣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렇다면 내가 들려주마. 우리의 친구는 네가 아니라 그 <악마>란 말이다.
    이게 우리의 비밀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너를 버리고 그와 한패가 되었다. 벌써 8세기 전부터의 일이지.
    옛날에 네가 분연히 거부한 것을, 그가 이 지상의 왕국을 가리켜 보이며 너에게 권했던 그 마지막 선물을, 우리는 8세기 전에 그로부터 받았던 거다. 우리는 그의 손에서 로마와 케사르의 검을 받아 쥐고, 우리만이 지상의 유일무이한 왕자라고 선언했다.
    하기는 이 사업을 충분히 완성시킬 겨를이 없었지만, 그건 우리의 죄가 아니다. 이 사업은 아직 초기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어쨌든 이미 착수된 것만은 사실이다. 아직 완성되려면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하고, 이 지구는 아직도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끝내 목적을 관철하여 케사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인류의 세계적 행복을 생각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그때 이미 넌 케사르의 검을 손에 잡을 수 있었는데, 어째서 그 최후의 선택을 물리쳤느냐?
    그때 그 위력 있는 악마의 제3의 권고를 받아들였다면,
    너는 지상의 인류가 구하고 있는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었을 거다.
    즉, 숭배할 만한 사람과 양심을 맡길 만한 사람, 그리고 모든 인간이 세계적으로 일치하여 개미처럼 결합될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왜냐하면, 세계적 결합의 요구는 인류의 제3의 고민거리인 동시에 마지막 고민거리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류는 어떻게 해서든지 세계적인 통합을 이룩하려고 항상 노력해 왔다. 우대한 역사를 가진 위대한 국민은 많이 있었으나, 이들 국민은 높은 위치를 차지하면 할수록 더욱더 불행해져 갔다. 왜냐하면, 남보다 월등하게 강한 자일수록 인류의 세계적 결합의 요구를 더욱 강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티무르나 칭기즈 칸과 같은 위대한 정복자들은 우주 전체를 정복하려고 선풍과 같이 이 지상을 휩쓸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무의식적이긴 하지만, 동일한 인류의 세계적, 전반적 결합의 위대한 요구를 표현했던 것이다.
    전 세계와 케사르의 왕의를 손에 넣었을 때 그때야 비로소 세계적 왕국을 건설할 수도, 세계적인 평화를 설정할 수도 있는 거다. 왜냐하면 인간의 양심을 지배하고 그들의 빵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인간을 지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케사르의 검을 잡았다. 그리고 그것을 잡은 이상, 물론 너를 버리고 그를 따라갔다. 오오, 인간의 자유로운 지혜, 과학, 그리고 인육 탐식의 무법시대가 앞으로도 몇 세기는 더 계속될 거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우리의 힘을 빌리지 않고 바벨탑을 건설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결국에 가서는 인육 탐식으로 끝나는 것이 뻔하다, 그러나 종국에 가서는 이 야수가 우리에게로 기어와서 우리의 발을 핥으며, 그 눈에서 피눈물을 쏟을 게 분명하다. 그러면 우리는 그 야수를 타고 앉아 축배를 드는데, 그 잔에는 <신비>라고 씌어 있을 거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평화와 행복의 왕국이 인류를 찾게 되는 거다.
    너는 자기의 선택된 사람들을 자랑하지만, 그 대신 너에겐 그 선택된 사람들밖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안식을 주는 거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 선택된 사람들, 선택된 사람이 될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지닌 사람들 가운데서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너를 기다리다. 지쳐서, 그 정신력과 정력은 전혀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고, 또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또 나중에는 너를 향해 자유의 반기를 높이 들게 될 거다. 하기는 너 자신도 그런 깃발을 높이 든 적이 있었으니까…….
    이에 반해 우리 쪽은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되어, 너의 그 자유로운 세계에서는 도처에서 행해지고 있는 그러한 반란이나 살육 행위가 근절되고 말거다. 오오, 우리는 그들을 설득하리라.
    너희들이 우리를 위해 자기의 자유를 버리고 우리에게 복종할 때, 그때야 비로소 너희들은 자유롭게 되는 거라고, 자 어떠냐. 우리의 말이 옳으냐. 아니면 거짓말이냐? 아니, 그들은 반드시 우리의 말이 옳다고 확신할 거다. 왜냐하면 너의 그 자유 덕분에 얼마나 무서운 노예상태와 혼란 속에 빠졌던가를 그들은 상기할 테니 말이다. 자유니, 자유로운 지혜니, 과학이니 하는 것은 그들을 무서운 계곡으로 끌고 가서 무서운 기적과 해결할 수 없는 신비 앞에 세움으로써 그들 중에서도 가장 완고하고 사나운 자들은 스스로 제 목숨을 끊을 것이고, 반항적이긴 하지만 겁 많은 자들은 서로서로를 죽이게 될 것이며, 나머지 제3의 부류에 속하는 무력하고 가련한 자들은 우리의 발밑으로 기어와서 이렇게 외치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당신들은 옳았습니다. 당신들만이 하느님의 신비를 지니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네들한테로 돌아옵니다. 제발 우리를 우리 자신들로부터 구해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그들 자신이 얻은 빵을 그 손에서 거둬들였다가, 돌을 빵으로 변하게 하는 기적 같은 것도 행함이 없이 다시 그들에게 분배해 준단 말이다. 그들은 빵을 받을 때, 물론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이 기뻐하는 것은 그 빵 자체보다도 오히려 그것을 우리의 손에서 받는다는 사실 때문이야. 왜냐하면 전에 우리가 없을 때는 그들 자신이 획득한 빵이 그들의 손안에서 돌로 변해 버렸지만, 우리의 품안에 돌아왔을 때는 그 돌이 그들의 수중에서 다시 빵으로 변한 것을 그들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지. 영원히 복종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그들은 그야말로 뼈저리게 느끼게 될 테니까!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인간은 언제까지나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야.
    그런데 이러한 몰이해를 조장한 건 대체 누구냐 말이다. 말해 봐!
    양떼를 흩어지게 하여 이리저리 낯선 길로 쫓아 버린 것은 대체 누구냐?
    그러나 그 양떼는 다시 한데 모여, 이번에는 영원히 얌전하게 되리라. 그때 우리는 그들에게 조용하고도 겸허한 행복을, 천성이 연약한 동물에게 알맞은 행복을 주게 될 거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그들을 설복하여 자부심을 갖지 않게 만들어 보이겠다. 왜냐하면 그들의 위치를 끌어올림으로써 자부심을 갖도록 네가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야. 우리는 그들이 무력하고 불쌍한 어린애에 지나지 않으며, 어린애의 행복이야말로 가장 감미롭다는 것을 그들에게 증명해 보이겠다. 그러면 그들은 겁쟁이가 되어, 마치 암탉 품안으로 모여드는 병아리처럼 두려움에 온몸을 떨며 우리들의 곁에 들러붙어 우리를 우러러보게 될 거다. 그들은 경탄의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며 공포에 떨면서도 그처럼 날뛰던 수억의 양떼를 진압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과 뛰어난 지혜를 가진 우리를 자랑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성을 내면 그들은 전전긍긍하여 가엾게 떨면서 아녀자들처럼 금방 눈물을 흘릴 것이고, 우리가 좋은 낯으로 손짓을 하기만 하면 그들은 기쁨과 웃음에 싸여 어린애다운 행복한 노래를 부르며 희희낙락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들에게 노동을 시키겠지만, 여가가 있을 때에는 어린애다운 유희와 노래와 합창과 순진한 춤으로 시간을 즐기게 하겠다. 그렇다. 우리는 그들의 죄까지도 용서해 주겠다. 그들은 무력하고 의지가 박약한 자들이므로 죄를 범하는 것을 용서해 주면 어린애처럼 우리를 따르게 될 거다. 어떤 죄든지 우리의 허락만 받으면 모두 속죄될 것이라고 우리는 그들에게 말해 주련다. 죄악을 용서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 죄에 대한 벌은 우리가 떠맡겠다고 일러주겠다. 그러면 그들은 하느님 앞에서 자기들의 죄를 대신 맡아 준 은인이라 하여 우리를 숭배하게 도리 것이고, 우리에게는 무엇 하나 숨기려 들지 않게 될 거란 말이다. 그들이 아내 이외에 정부를 두고 사는 일도, 아이를 가지거나 안 가지는 일도, 모든 것을 그 복종의 정도에 따라 허가하기도 하고 금지하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기쁘고도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에게 복종하게 되는 거다. 가장 괴로운 양심의 비밀까지도, 그 밖의 무엇이든 하나도 숨김없이 모조리 우리한테 털어놓을 것이고 우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내리는 해결을 기꺼이 믿을 것임에 틀림없어. 왜냐하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커다란 걱정거리에서 피할 수도 있고, 지금처럼 스스로 자유롭게 해결지어야 하는 무서운 고통에서도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지.
    이리하여 모든 인간은, 수백만의 모든 인간은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통솔하는 몇 십만의 모든 인간은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통솔하는 몇 십만의 삶들만은 여기서 제외도리 거다. 왜냐하면 비밀을 간직해야 하는 우리들만은 불행을 감수해야 하니까. 즉 몇 억의 행복한 갓난아기들과, 선악을 판별하는 저주를 자기 몸에 지닌 몇 만 명의 수난자가 생겨나는 거지. 이들 대다수의 불쌍한 갓난아기들은 너의 이름을 위해 죽어 가는 거야. 조용히 사라져 가는 거야. 그리고 관 너머에서는 죽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지. 그러나 우리는 비밀을 간직한 채, 그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천국의 영원한 보상을 미끼로 하여 그들을 유혹할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저 세상에 무언가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과 같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사람들의 말이나 예언에 의하면, 너는 또다시 이 세상에 온다더구나. 또 다시 모든 것을 정복하여 선택받은 사람들과 위대한 강자들을 거느리고 온다는 거야.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말할 테다 - 그들은 다만 자기 자신을 구원했을 뿐이지만 우리는 모든 사람을 구원해 주었다고, 또 이런 이야기도 있어 - 결국은 약한 자들이 또다시 봉기하여, 야수를 타고 앉아 비밀을 손에 쥔 간부(姦婦)의 낯가죽을 벗기고, 그 왕의를 찢어 추한 몸뚱이를 사람들 앞에 발가벗겨 보일 거라고, 그러나 그때는 우리가 일어나 죄 없는 몇 억의 행복한 아이들을 너한테 가리켜 보일 테다. 그들의 행복을 위해 그들의 죄를 떠맡은 우리는 네 앞을 가로막고, <자, 우리들 심판할 용기가 어서 있거든 심판해 봐라!>고 외칠 테다. 알겠나, 나도 너 같은 건 조금도 무섭지가 않아.
    나 역시 황량한 들판에서 메뚜기가 풀뿌리로 연명해 본 일이 있단 말이다. 너는 자유를 가지고 인류를 축복했지만, 나 역시 그 자유를 축복한 적이 있었다. 나 역시 수를 채우기를 갈망하여 너의 소위 선택된 사람들 사이에, 위대하고 강한 사람들 사이에 한몫 끼어 보려 한 적이 있었단 말이다. 그러나 나는 꿈에서 깨어나 너의 사업에 수정을 가한 사람들 무리에 끼어든 거다. 즉, 나는 거만한 자들의 곁을 떠나 겸손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겸손한 사람들한테로 돌아왔단 말이다. 이제 내가 말한 것은 실현되고, 우리의 왕국은 건설될 것이다.
    다시 되풀이하지만, 내일이면 너도 그 온순한 양떼를 보게 되리라.
    내가 손을 조금 흔들기만 해도, 그들은 앞을 다투어 달려와 너를 불태울 장작더미에 시뻘건 숯덩이를 던져 넣을 테니 말이다.
    그건 다시 말해서, 네가 우리의 일을 방해하러 왔기 때문이야.
    사실 누구보다도 먼저 화형에 처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너란 말이다.
    나는 내일 너를 화형에 처하겠다. 내가 할 말은 다했다..”




    이반은 여기서 말을 멈췄다.
    열중하여 정신없이 지껄여 댔으나 말을 마치고 나서 그는 갑자기 히죽이 웃어 보였다.
    줄곧 말없이 듣고만 있던 알료사는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 가서는 몹시 흥분하여 몇 번이나 형의 말을 가로채려 하다가 억지로 참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그는 마치 용수철이라도 튕기듯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그건 불합리한 얘깁니다!”
    그는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소리쳤다.
    “형님의 극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찬미지, 결코 비난은 아닙니다.
    형님이 기대했던 결과와는 달라요. 게다가 형님의 그 자유론을 누가 믿겠습니까? 도대체 자유라는 걸 그렇게 생각해도 좋을까요?
    과연 그것이 정교의 해석일까요? 그건 로마의 해석입니다. 아니, 로마의 해석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건 거짓말입니다. 그건 가톨릭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입니다. 심문관의 사상입니다. 예수회의 사상입니다! 그리고 또 형님이 말씀하신 그런 심문관 같은 환상적인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할 리도 없고요, 자기가 떠맡았다는 인간의 죄란 대체 무엇입니까? 인류의 행복을 위해 저주를 떠맡은 비밀의 보유자란 대체 무엇입니까? 그런 사람이 도대체 언제 있었습니까? 우리도 예수회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회 사람들이 욕을 먹고는 있습니다만, 그래도 형님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전혀 달라요. 전혀 다르단 말입니다…그들은 다만 로마 교황을 제왕으로 삼는 미래의 세계적 왕국을 위해 노력하는 로마의 군대에 지나지 않습니다....이것이 그들의 이상입니다만, 거기에는 아무런 신비도 없거니와 고상한 비애도 없습니다.....
    권력과, 더러운 지상의 행복, 그리고 예속, 이런 요소에 대한 지극히 단순한 희망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예속은 미래의 농노제와도 같은 것이지만, 문제는 그들 자신이 지주가 된다는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그들의 전부올시다.
    그들은 아마 하느님도 믿지 않을 겁니다. 형님의 그 고민하는 심문관은 오로지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애, 좀 기다려”하고 이반은 웃었다.
    “너무 흥분하지 마라. 너는 환상이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좋다! 물론 환상이긴 하지. 그렇지만 말이다, 너는 정말 최근 몇 세기 동안의 가톨릭 운동이 오직 더러운 행복만을 추구하는 권력에의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냐? 빠이시 신부가 그렇게 가르쳤니?”

    “아니, 그런 건 아닙니다. 빠이시 신부는 오히려 형님과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그렇지만 물론 다른 뜻입니다. 그것과는 전혀 다른 뜻이었어요.” 알료사는 황급히 이렇게 고쳐 말했다.

    “네가 <전혀 다른> 뜻이라 말한다 해도 어쨌든 그건 매우 귀중한 보고야. 그런데 한 가지 묻겠는데, 너는 왜 예수회 회원들이나 심문관들이 오직 더러운 물질적 행복만을 위해 단결했다는 거냐? 어째서 그들 중에는 위대한 비애와 고뇌 속에서 인류를 사랑하는 수난자가 한 사람도 존재할 수 없다는 거냐? 더러운 물질적 행복만을 바라고 있는 자들 가운데도, 적어도 한 사람쯤은 내가 얘기한 노심문관과 같은 사람이 있었다고 상상할 수도 있지 않겠니? 그는 광야에서 풀뿌리로 연명하면서 자기 자신을 자유롭고 완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육체를 정복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계속했지만,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한평생 변함이 없었던 거야. 그러나 그는 홀연히 깨달아, 의지의 완성에 도달하는 정신적 행복이 그다지 위대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 왜냐하면 자기 혼자만이 의지의 안성에 도달한다면, 그 밖의 수억의 인간은 그저 조소의 대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지. 사실 그들은 자기의 자유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어. 이런 가련한 반역자들 중에서 바벨탑을 완성할 거인이 나올 리가 없지. 저 <위대한 이상가>는 이 거위와 같은 어리석은 무리를 위해 조화의 세계를 꿈꾸었던 것은 아니다.
    이것을 깨달았으므로 그는 광야에서 돌아와 현명한 사람들 편에 가담했던 거야. 과연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까?”

    “누구의 편에 가담했다는 겁니까? 현명한 사람들이란 누굽니까?” 알료샤는 거의 광분한 듯이 소리쳤다.
    “그들에겐 전혀 그런 지혜라곤 없습니다. 그런 신비니 비밀이니 하는 것도 전혀 없고요. 있는 것은 그저 무신론뿐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비밀의 전부입니다. 형님의 그 노심문관은 하느님을 믿지 않습니다. 이것이 노인의 비밀의 전부입니다!”

    “그래도 좋다! 드디어 너도 알아챘구나. 사실 그렇다, 사실 그의 모든 비밀은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거야.
    그러나 그와 같은 인간에게도 과연 그것은 고통이 아닐 수 있을까? 그는 광야의 고행에서 일생을 망쳐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여전히 인류에 대한 사랑을 버릴 수 없었던 사람이야. 그는 자기 생애의 황혼기에 이르러서야, 그 위대하고 무서운 악마의 충고만이 연약한 반역자들을 <조소의 도구로 창조된 미완성인 시험적 생물>을 다소나마 견디기 쉬운 처지에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명백히 확신한 거야.
    이렇게 확신하자 그는 지혜로운 악마, 무서운 죽음과 파괴의 두려운 악마의 지시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지.
    그러기 위해서는 거짓말과 속임수를 받아들여, 의식적으로 인간을 죽음과 파괴로 이끌어야 하며, 그러면서도 그들이 어디로 끌려가는지 알아채지 못하게 함으로써 적어도 그 동안만이라도 그 가련한 맹인들이 스스로 행복을 느끼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거야.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 기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진다는 거야. 그가 한평생 자기의 이상으로 열렬히 신봉해 온 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이야. 자, 이래도 불행하지 않겠니? 만약 그 더러운 행복만을 위해 권력을 갈망하는 군대의 우두머리로 단 한 사람이라도 이런 인물이 나타난다면 이런 인물 한 사람만으로도 비극을 낳기에 충분하지 않느냐 그 말이야. 뿐만 아니라 이런 인물이 단 한 사람이라도 우두머리가 된다면, 로마의 사업, 그 군대도 예수회도 모조리 포함해서, 로마의 사업에 대한 진실하고도 지도적인 고상한 이상을 낳기에 충분하지 않느냐 그 말이야. 나는 단언한다. 그리고 굳게 믿는다. 이와 같은 <유일한 인간>은 모든 운동의 선두에 섰던 사람들 가운데 지금까지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다고, 어쩌면 로마의 추기경들 중에도 이런 종류의 <유일한 인간>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거야. 아니, 이처럼 집요하게 자기 식으로 인류를 사랑하고 있는 이 저주할 노인은, 역시 동일한 유일자적인 노인의 대집단 속에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이것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훨씬 전부터 비밀을 지키기 위해 조직된 동맹, 또는 비밀결사로서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거야. 이러한 비밀을 나약하고 불행한 인간들로부터 감추는 것은, 그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지. 이것은 반드시 존재해. 또 존재하지 않으면 안 돼. 나는 어쩐지 프리이메이슨의 그 밑바닥도 이와 비슷한 비밀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가톨릭교도들이 프리메이슨을 미워하는 까닭은 그것을 자기들의 경쟁자 내지는 이상의 단일성의 파괴자라고 보기 때문이야.
    왜냐하면 양떼도 하나, 목자도 하나여야 하기 때문이지....
    그건 그렇게 내가 이렇게 내 사상을 변호하다 보니, 마치 너의 비평을 감당해 내지 못하는 초라한 작자 꼴이 된 것 같구나. 자, 이젠 그만두자.”

    “형님 역시 프리이메이슨의 일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알료샤는 불쑥 이렇게 말했다.
     “형님은 하느님을 믿고 있지 않아요.” 그는 이렇게 덧붙였으나 그의 음성에는 비애가 서려 있었다.
    게다가 그는 형이 자기를 냉소적인 눈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데 형님의 시는 어떻게 끝나는 겁니까? 갑자기 눈을 내리깔며 알료샤는 물었다.
    ”아니면 그것으로 이미 끝난 건가요?"

    “나는 이렇게 끝을 맺기로 했어. 심문관은 말을 마치고 얼마 동안 죄수의 대답을 기다렸지. 그는 상대방의 침묵이 괴로웠어.
    그러나 죄수는 조용히 노인의 눈을 들여다보며 뭐라고 대꾸할 기색도 없이 그냥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이야. 노인은 무심코 괴로운 말이라도 좋으니 뭐라고 말해주기를 바랐어.
    그러나 갑자기 죄수는 말없이 노인에게 다가오더니, 90나이의 그 핏기 없는 입술에 조용히 입을 맞췄지.
    그것이 대답의 전부였어. 노인은 부르르 몸을 떨었어. 그의 입술 양끝이 경련을 일으킨 듯 파르르 떨리는 것 같았어.
    그는 곧 문 쪽으로 걸어가서 문을 열어젖히고서 <오지 말란 말이다....앞으로 영원히!>이렇게 말하고는
    그를 <어둠의 광장>으로 내보냈어. 죄수는 조용히 떠나가는 거지.”

    “그래서 그 노인은 어떻게 됐나요?”
    “그 키스는 노인의 가슴 속에서 불타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기 사상에 머물고 있었지.”
    “그리고 형님도 그 노인과 한패죠, 형님도?” 알료샤는 슬픈 듯이 외쳤다. 이반은 히죽 웃었다.

    “이봐, 알료샤, 이건 다 잠꼬대 같은 얘기야. 시라고는 단 두 줄도 써 본 일이 없는 학생의 분별없는 시에 불과해. 넌 왜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거냐? 그래 너는 내가 정말로 예수회를 찾아가서 그리스도의 위업에 수정을 가하는 자들과 한패가 될 거라고 생각하니? 천만에, 그건 나하곤 관계없는 일이야! 나는 너한테도 말했듯이 서른 살까지 이럭저럭 살고는, 서른 살이 되면 술잔을 마룻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거야!”

    “그럼, 그 끈적끈적한 새 잎은 어떡하고요? 그리고 소중한 무덤은? 사랑하는 여자는? 그럼 형님은 무엇을 발판으로 살아가겠다는 겁니까? 어떻게 그런 것들을 사랑하겠냔 말입니다.” 알료샤는 다시 슬픔에 젖은 어조로 소리쳤다.
    “가슴과 머리에 그런 지옥을 품고 있으면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을까요? 아니, 형님은 예수회 사람들을 찾기 위해 여길 떠날 겁니다...만일 그렇지 않다면 자살이라도 해 버릴 겁니다. 도저히 견디어 낼 수 없을 거예요!”
    “무엇이든 견디어 낼만 한 힘은 있어!”
    이미 이반의 목소리 속에는 싸늘한 조소가 서려 있었다.
    “어떤 힘인데요?”
    “카라마조프적인 힘이지....카라마조프 비열한 힘 말이다.”
    “그건 음탕 속에 빠져, 타락 속에서 영혼을 질식시키는 거죠. 그렇죠, 형님?”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건 서른 살까지야. 어쩌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때는.......”
    “어떻게 벗어난다는 겁니까, 무엇으로요? 형님 같은 사상을 가지고는 불가능해요.”
    “그것 역시 카라마조프 식으로 하는 거야.”
    “그건 <모든 것이 허용 된다> 그겁니까? 정말 모든 것은 허용되는 걸까요? 그렇습니까, 형님?”
     알료샤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얘, 알료샤야, 나는 떠나기에 앞서 이 넓은 세상에서 그래도 너만은 내 친구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반은 갑자기 예측하지 못했던 정열적인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제는 내 귀여운 은사, 너의 가슴 속에도 내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는 걸 알았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허용 된다>는 정의는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너는 이 정의 때문에 나를 부정할 테지,  안 그러니?”

    알료샤는 자리에서 일어나 형에게로 다가가서 조용히 그 입술에 입을 맞췄다.
    “이건 문학적 표절이군!” 이반은 갑자기 기쁜 표정으로 변하며 이렇게 외쳤다.
    “너는 이 키스를 내 극시에서 훔쳐냈지! 아무튼 고맙다, 자, 알료샤, 이만 일어나자. 이젠 갈 때가 된 것 같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들은 밖으로 나갔으나, 레스토랑 현관에서 걸음을 멈췄다.

    “얘, 알료샤.” 이반은 확고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내가 만일 끈적끈적한 새 잎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건 널 상기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할 수 있을 거야. 그래, 이런 얘긴 이제 그만두기로 하자. 뭣하면 내 사랑의 고백이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이만 헤어지자. 너는 오른쪽으로 가고 나는 왼쪽으로 가고, 자 이젠 다 끝났다. 다 끝났어. 만약 내가 내일 떠나지 않고 (아마 틀림없이 떠날 거로 생각하지만) 어쩌다 다시 또 너를 만나더라도 이런 문제에 대해선 아무 말도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정말 이것만은 신신 당부해 둔다. 그리고 드미뜨리 형에 대해서도 제발 아무 말 말아 다오.” 그는 갑자기 짜증스런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였다. 속 시원히 다 털어놓았어. 그렇잖니? 그건 그렇고 나도 너한테 한 가지 약속해 두겠다. 내가 서른 살이 되어 <잔을 내동댕이치고> 싶어졌을 때, 나는 네가 어디 있건 또 한 번 너와 얘기하러 찾아오겠다....비록 미국에서라도 찾아올 테니 그리 알아라, 너와 얘기하기 위해 일부러 오는 거야. 그리고 네가 그때 어떤 인간이 되어 있을지, 한번 만나 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유쾌할 게다. 어떠냐. 제법 엄숙한 약속이지. 그러나 정말 이것이 7년이나 10년쯤의 이별이 될는지도 모르는 거야. 자, 어서 너의 Pater Seraphicus(신부 세라피쿠스.<파우스트>에서의 인용) 한테나 가 봐라, 지금 죽어 가고 있으니까, 네가 없을 때 죽으면, 내가 말렸기 때문이라고 나를 원망할지도 모를 테니, 그럼 잘 가, 다시 한 번 내게 키스해 주고, 그래 됐다......이젠 가 봐라.....”
    이반은 홱 몸을 돌리더니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은 어제 드미뜨리 형이 알료샤의 옆을 떠나가던 때의 모습하고 너무나도 흡사한 데가 있었다.
    물론 어제하고는 전혀 성질이 다른 것이기는 하지만, 이 기묘한 인상은 그렇지 않아도 슬프고 처량한 알료샤의 머릿속을 화살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갑자기 그는 이반이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게다가 뒤에서 보니 오른쪽 어깨가 왼쪽 어깨보다 축 처져 있기까지 했다. 전에는 한 번도 이런 것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알료샤도 몸을 돌려 거의 달리다시피 수도원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벌써 날이 꽤 저물어 어쩐지 무서운 생각가지 들었다.
    뭐라고 꼭 짚을 수는 없었지만 그 어떤 새로운 것이 그의 마음속에 성장하고 있었다.
    그가 수도원 숲에 들어섰을 때 어젯저녁처럼 바람이 일더니 수백 년 묵은 노송이 그의 주위에서 음산하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는 거의 뛰어가다시피 걷고 있었다. <Pater Seraphicus, 형님은 도대체 이런 이름을 어디서 끌어냈을까? 대관절 어디서?>
    이런 생각이 알료샤의 머리에 떠올랐다.
    <아, 불쌍한 이반 형, 이제 또 언제 형님을 만날 수 있을는지....드디어 암자로구나! 그렇다, 바로 여기에 Pater Seraphicus가 계시는 거다. 그분이 나를.....악마로 부터 영원히 구해 주시는 거야!>
    그 후 알료샤는 여러 번 깊은 의혹을 느끼며 이때의 일을 회상하곤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이반 형과 헤어졌을 때 어떻게 그처럼 완전히 드미뜨리 형을 잊을 수 있었던가 하는 의문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인 그날 오전만 해도, 무슨 일이 있어도 드미뜨리를 꼭 찾아내야만 한다.
    만일에 그를 찾지 못하면 그날 밤에 수도원에 들어가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시내를 떠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지 않았었던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중에서  대심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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