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엄사>환자 뜻이 가장 중요… 가족·의사 결정만으론 치료중단 못한다

    2009. 5. 22.

    by. 셰익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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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명치료 중단 절차 등 구체적 기준 마련해야

    대법원이 존엄사를 인정한 것은 의학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환자에게 무의미한 치료를 계속하는 것보다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길이라는 취지다. '사람답게 살 권리' 못지않게 '사람답게 죽을 권리'도 중요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은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퇴원시켜달라는 가족들의 요구를 들어줬다가 환자를 사망하게 한 혐의(살인방조)를 받은 의사 2명에게 지난 2004년 유죄를 선고한 이후, 5년 만에 연명치료 중단이 가능하다며 다소 전향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존엄사가 의료계 일부에서 오래전부터 사실상 묵인돼왔다는 현실과, 2002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존엄사를 인정하는 서구 국가들이 점차 늘고 있다는 추세도 반영한 판결이라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품위 있게 죽을 권리 인정… 기준은 까다롭게

    대법원은 다만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분명한 기준을 제시, 존엄사가 남발될 수 없도록 했다. 대법원은 "생명과 직결되는 진료행위를 중단할 것인지 여부는 생명권 존중의 헌법이념과 사회상규에 비추어 극히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대법원이 반드시 충족해야 한다고 정한 기준은 두 가지다.

    첫째,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있는 환자에 국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환자의 의식이 회복 가능성이 없고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생체기능의 상실을 회복할 수 없으며
    ▲환자의 신체상태에 비추어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한 경우에만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있는 환자로 볼 수 있다고 규정했다.
    전문 의료진이 세 가지에 모두 부합한다고 판단하면 회복이 불가능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해당 환자가 연명치료를 중단하겠다는 의사가 있는 것으로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의 뜻에 의해 존엄사가 남발되면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해석에 따라 가족이나 의료진의 의사로 치료가 중단돼선 안 된다고 못박은 것이다.

    아직 기준이 모호… 구체적인 입법 필요

    이번 대법원 판결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비중을 둔 판결로, 이미 식물인간이 된 환자 김모(여·76)씨가 과연 치료 중단을 원했는지가 가장 큰 쟁점이었다.

    김씨 가족측 신현호 변호사도 "대법원이 (김씨의 의사에 대한) 주변정황이 갖는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준 결과 나온 판결"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떼어내고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는지를 명확하게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앞으로 또 다른 존엄사 판단에서 환자의 의사를 두고 첨예한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일단 "환자가 사전의료지시서 등 미리 문건으로 (치료 중단) 의사를 밝힐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평소의 가치관·신념으로 비춰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례로 남게 될 김씨의 경우 일상대화에서 "나는 저렇게까지 남에게 누를 끼치며 살고 싶지 않고 깨끗이 떠나고 싶다"고 말해온 점이 인정됐다. 하지만 평소 연명치료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젊은 사람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식물인간이 됐다면 당사자가 연명치료를 계속 받겠다는 건지, 아니면 중단하겠다는 건지 의사를 알 길이 없다. 평소에 존엄사 의사가 있었더라도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이후에도 계속 존엄사를 원하는지도 판단이 어려운 영역에 있다.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들어선 경우'도 의견이 엇갈릴 소지가 없지는 않다.

    다수 대법관이 정한 존엄사 기준에 반대한 이홍훈·김능환 대법관은 "김씨의 경우를 볼 때 아직도 기대여명이 4개월 이상으로 판정되는 등 상당수 환자의 경우에 돌이킬 수 없는 사망상태라고 단정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절차와 기준이 구체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하루빨리 존엄사의 세부기준을 규정한 입법(立法)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아직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점과 종교계를 중심으로 존엄사 허용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는 점도 풀어내야 할 숙제다.

    앞으로 입법 과제는

    대법원의 존엄사 허용 판결로 존엄사 입법 움직임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존엄사 입법상의 핵심 쟁점은
    ▲소생 불가능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과 ▲이를 누가 판단하느냐의 주체의 문제다.

    1990년대 말부터 국내 대다수 대학병원들은 말기 환자가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치료 등의 생명 연장 치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관행적으로 운영해 왔다.
    최근 서울대병원이 이 같은 사전의료 결정서를 공개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힌 것도 지금까지의 운영 경험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병원 의료진의 자체적인 결정에 의해 이뤄졌으며, 법적 효력을 갖지 못했다.
    따라서 입법 과정을 통해 환자의 의사 결정 절차와 소생 불가능 기준이 제시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 논란이 되는 것은 현재 연명 치료 거부 결정 10건 중 8~9건은 환자가 아닌 가족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환자에게 죽음의 방식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족 결정에도 법적 효력을 부여할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의학계에서는 환자가 뇌사 상태이거나 심장·신장 등 여러 장기가 손상돼 임종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명확한 근거가 있다면, 환자의 의사 표시 없이도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경제적인 이유로 존엄사 결정이 남용되는 것도 방지돼야 한다.
    국립암센터 윤영호 박사는 "경제적 취약 계층은 의학적 상태와 관련 없이 생명 연장 중단 치료를 선택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며 "저소득층에게는 필수 생명 연장 치료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법원이나 병원의 생명윤리 위원회가 생명 연장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말기 환자의 요구를 인정했음에도 담당 의사가 개인의 소신에 따라 이를 거부할 경우, 해당 의사를 처벌할 수 있는지도 논란이 된다.
    서울대병원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는 "의사의 직업적 소신에 따라 하는 행동을 법으로 처벌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럴 경우 새로운 분쟁이 나올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존엄사를 반대할 경우, 이를 조정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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